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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28.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척 디①

억압받았던 흑인의 과격한 반란, 초창기 힙합의 정신적 지주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흑인민권운동 이후 인종차별은 점차 사라져갔다. 이제는 흑인도 투표를 할 수 있었고, 백인 전용식당이나 전용버스도 폐지되는 등 법적으로 백인과 흑인은 같은 사람이 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이 그럴 뿐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1992년 LA 폭동을 비롯해 수년간 크고 작은 흑인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2020년에는 백인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남성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이 일었다.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Black Lives Matter’를 붙이는 사회운동까지 일어나는 등 21세기 들어서도 인종차별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성공하는 것은 백인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오랜 시간 주류였던 백인들은 상류층 교육을 통해 부를 유지했지만 먹고 살기 어려웠던 흑인들에게 교육은 사치일 뿐이었다. 즉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진 것으로, 멀리 갈 것 없이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특목고 폐지 등을 통한 고교평준화를 주장하는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지만 정작 그들의 자녀는 대부분 특목고를 졸업했다. 집값 정상화를 외치면서 본인은 다주택자인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도 이럴 진데 신자유주의 체제인 미국은 말 할 것도 없다. 

  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이라고 성공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 이후 인종과 관계없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문화와 스포츠는 흑인이 강세를 보이는 몇 안 되는 분야였다. 오늘날 미국에서 힙합과 농구는 흑인이 점령하다시피 했고, 다른 대중음악과 스포츠 분야에서도 흑인이 없으면 흥행에 큰 차질을 빚는 수준이 됐다. 

  힙합이 처음부터 흑인의 성공을 보장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흑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힙합음악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들만의 문화였을 뿐이었다. 대중들이 힙합에 관심이 가지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힙합 음악가 런-DMC가 대성공을 거두고, 비스티 보이즈같은 백인 힙합 음악가까지 나타나면서부터다. 힙합이 흑인 문화에서 시작한 분야다보니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이나 사회 비판은 기본이었고, 이유 없는 공격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이들 중 적극적인 사회 비판으로 흑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인물은 단연 척 디였다. 본명이 칼튼 리드나워인 척 디는 다른 힙합 음악가들처럼 폭력적인 저항 대신 사회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척 디는 대학까지 졸업하는 등 딱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척 디는 아델피대학교 그래픽 디자인학과에 다니면서 라디오 DJ로 활동하는 등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음악 활동을 하던 척 디는 아델피대학교 재학 중이었던 플레이버 플래브를 만났고, 같은 취미를 공유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플래브는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익혔고, 교회 성가대에서 드럼,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면서 음악적 이해가 깊었다. 고등학교 중퇴에 도둑질로 교도소를 다녀온 경험도 있는 사고뭉치였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점 덕에 척 디와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한 둘은 밤 스쿼드라는 힙합 그룹을 결성했다. 마치 대학교 동아리 만들어지듯 쉽게 결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척 디는 이미 스펙트럼 시티라는 힙합 그룹에서 싱글 <Check Out the Radio>를 발매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완전 무명의 음악가는 아니었다.  

  밤 스쿼드 결성 후 척 디는 라디오 DJ 시절 인연을 맺은 빌 스테프니의 소개로 릭 루빈을 만났다. 루빈은 훗날 콜럼비아 레코드의 사장이 되는 인물로 당시 데프 잼 레코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척 디와 플래브의 능력을 알아 본 루빈은 이들과 공식 계약을 맺었다. 이후 DJ 출신 터미네이터 X와 경호원 출신 프로페서 그리프를 섭외해 퍼블릭 에너미라는 힙합 그룹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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