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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31.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척 디③

억압받았던 흑인의 과격한 반란, 초창기 힙합의 정신적 지주

  기득권 세력들은 흑인의 도전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듯하다. 물론 아무리 백인이라도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거나 인권운동 한다는 것을 반대할 수는 없었기에 퍼블릭 에너미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못하고, 다른 이유로 트집 잡을 기회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평화적 운동을 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달리 퍼블릭 에너미의 가사는 공격적인 부분이 많아 논란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1989년 5월 프로페서 그리프는 『The Washington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유대인들은 세계적인 혼란에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 인터뷰에 크게 반발했고, 일각에서는 퍼블릭 에너미를 ‘블랙 나치’라고 불렀다. 유대인은 미국 미디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에 한동안 라디오에서 퍼블릭 에너미 곡을 들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테러조직 JDO(유대인 방위조합)는 퍼블릭 에너미에게 살해 협박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척 디는 상황 수습을 위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한편 프로페서 그리프를 퍼블릭 에너미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1990년 1월 싱글 <Welcome to the Terrordome>이 발매되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이 곡은 유대인을 겨냥한 곡으로 퍼블릭 에너미는 유대인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허구임에 틀림없어.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소위 엄선된 사과. 여전히 그들은 나를 예수처럼 여기지.’ - <Welcome to The Terrordome> 

 
 

  사회적 논란은 컸지만 퍼블릭 에너미를 옹호하는 여론도 작지 않았다. 퍼블릭 에너미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이 너무 과도하다는 주장이었다. 1990년 2월 7일자 『Los Angeles Time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왜 호들갑을 떠는지 궁금할 것이다. 유명 음악가들의 많은 노래들은 여성, 게이, 흑인, 가톨릭, 낙태 등을 공격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왜 유대인들의 감정이 저들보다 더 중요한가. 특히 이 곡은 가사도 애매모호하다.’ - 1990년 2월 7일 『Los Angeles Times』 

 
 

  논란은 이어졌지만 척 디는 누가 뭐래도 흑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논란이 커질수록 척 디를 추종하는 흑인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퍼블릭 에너미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도 흑인의 인권을 외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 만큼 논란과 비례해 흑인들로부터 받는 인기도 상승했다. 척 디는 인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과 같은 명작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했다. 

  퍼블릭 에너미가 1991년 4월 발매한 《Fear of a Black Planet》은 제목 그대로 흑인들을 위한 앨범이었다. 퍼블릭 에너미는 <Fight the Power>에서 백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존 웨인을 깎아내리고, 흑인의 영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00년 동안 우표에 흑인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여전히 미국 사회가 백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척 디는 <Power to the People>을 통해 아예 흑인들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고, <Brothers Gonna Work It Out>에서는 흑인들이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인들 입장에서는 심히 위험해 보이는 사상이었다.  

  퍼블릭 에너미에 대한 흑인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기에 보수 백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Fear of a Black Planet》은 빌보드 차트 10위에 오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들도 힙합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 시기 데뷔한 힙합 음악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정치적 메시지에 몰두했다. X-클랜, 파리스, 푸어 라이처스 티처스 등 정치적 메시지로 유명한 힙합 음악가들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힙합 음악가들의 절대다수가 흑인이었기에 이는 곧 흑인민권운동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일맥상통했다. 척 디 스스로도 1991년 10월 『The Village Voice』와의 인터뷰에서 “《Fear of a Black Planet》은 우리의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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