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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n 01.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척 디④

억압받았던 흑인의 과격한 반란, 초창기 힙합의 정신적 지주

  척 디는 ‘아프리카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흑인’이라고 통칭했다. 당시까지만 해도(현재도 그런 분위기가 없잖아 있지만) 흑인(Black)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모를 부정적인 뜻이 내포돼있었다. 그러나 흑인의 피부가 까만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은 각 사람의 특징일 뿐 평가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척 디 입장이었다. 척 디에게 있어 흑인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는 전혀 없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란 척 디를 아프리카와 연관 짓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기는 했다. 

  퍼블릭 에너미의 이어진 앨범 《Apocalypse 91… The Enemy Strikes Black》 역시 흥행을 이어갔다. 이제는 앨범을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흑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판매량은 보장된 것이었다. 《Fear of a Black Planet》과 마찬가지로 앨범 제목에 흑인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달았다.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곡은 <By the Time I Get to Arizona>로 마틴 루터 킹 기념일에 부정적 의견을 보인 에반 메참 애리조나 주지사를 겨냥했다. 척 디는 뮤직비디오에서 애리조나 공무원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자동차를 폭파시켜버렸다. 메참 주지사를 비판하는 많은 흑인들이 척 디를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MTV』에서 해당 뮤직비디오를 방영하자 폭력적인 장면으로 많은 항의를 받았고, 이후 『MTV』에서 <By the Time I Get to Arizona> 뮤직비디오는 볼 수 없었다. 

  퍼블릭 에너미는 항상 흑인들의 우상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핵심 멤버인 플래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고 다녔다. 1991년 플래브는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30일간 감옥에 갇혔다. 1993년에는 이웃에게 총을 쏜 혐의로 90일 동안 구금됐다. 총에 사람이 맞지 않아서 살인죄를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후에도 플래브는 폭행, 마약 등으로 경찰서를 오갔다. 

  다른 멤버인 터미네이터 X는 1994년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사실상 퍼블릭 에너미 활동을 중단했다. 플래브와 터미네이터 X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자 척 디는 1996년 솔로 앨범 《Autobiography of Mistachuck》을 발매했지만 빌보드 차트 190위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퍼블릭 에너미 없이 혼자서는 성공이 어렵다고 판단한 척 디는 터미네이터 X 후임으로 DJ 로드를 새로운 멤버로 영입해 그룹 재정비에 나섰다. 그렇게 1999년, 퍼블릭 에너미는 오랜만에 앨범 《There's a Poison Goin' On》을 발매했다. 이전처럼 사회 비판에 적극적이었고, 이로 인해 유대인의 항의까지 받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빌보드 차트에 진입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퍼블릭 에너미는 이후에도 간간히 앨범을 냈지만 이전 같은 영광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팝 음악이 결합된 얼터너티브 힙합이 유행하면서 정통 힙합을 추구했던 퍼블릭 에너미의 입지도 더욱 좁아졌다. 그렇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하드코어 힙합의 선구자이자 스크래치 사운드를 통해 갱스터 랩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1990년대 중반까지 힙합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지금처럼 힙합이라는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흑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퍼블릭 에너미가 없었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2020년, 퍼블릭 에너미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 입방아에 올랐다. 2020년 3월 1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퍼블릭 에너미는 버니 샌더스 민주당 예비후보 선거 유세 행사에 찬조 참여했다. 그러나 플래브는 참여를 거부하며 샌더스 유세 현장에 퍼블릭 에너미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플래브 측은 “척 디는 그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그의 목소리가 퍼블릭 에너미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척 디는 “플래브는 돈을 위해 춤을 추는 길을 택했고, 선행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실 척 디와 플래브는 음악 저작권료 등의 문제로 수년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간 팽팽하게 이어진 갈등이 정치적 문제로 폭발한 것이다. 척 디를 포함한 퍼블릭 에너미 멤버들은 플래브의 해고를 결정했고, 다른 멤버들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플래브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플래브는 트위터를 통해 “지금 장난해? 버니 샌더스? 우리가 쌓아온 35년을 정치적 이유로 파괴한다고?”라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척 디는 성명을 통해 “퍼블릭 에너미는 플래브 없이 전진할 것”이라며 “수년간 활동해 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앞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플래브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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