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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n 03.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빌리 조 암스트롱①

'전쟁보다는 평화를' 미국을 흔든 펑크의 부활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초강대국 위치에 올랐다. 그 누구도 미국에 도전할 생각을 못했고 오히려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목소리였을 뿐 국가가 공식적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벌어진 2001년 9·11 테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날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는 여객기를 납치한 후 그 여객기로 세계무역센터를 들이 받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을 저질렀다. 공식적인 사망자만 3000명에 달했고, 부상자나 2차 피해자의 수는 제대로 집계하지도 못했다. 분노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2003년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아 지금도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를 전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특히 이라크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동 장악과 석유 확보라는 뒷말도 나돌았다. 대중음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닐 영, 패티 스미스, 마돈나 등 원로 음악가들뿐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도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 비판에 앞장섰던 젊은 음악가가 바로 빌리 조 암스트롱이 이끄는 펑크 밴드 그린데이였다. 

 
 

  그린데이의 역사는 1987년 미국 오클랜드에 거주하던 암스트롱과 그의 친구 마이크 던트가 스위트칠드런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몇 명의 멤버 교체를 겪으며 암스트롱(기타), 던트(베이스), 존 키프마이어(드럼), 3인조 밴드로 거듭났고 1990년 첫 앨범 《39/Smooth》를 발매했다. 무명 밴드의 앨범이었기에 빌보드 차트는커녕 앨범을 발매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둬야했지만 훗날 그린데이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39/Smooth》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키프마이어가 탈퇴하고 트레 쿨이 드러머로 합류했다. 새로운 멤버를 맞은 그린데이는 1991년 2집 《Kerplunk》를 발매했고, 유럽으로 공연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그저 그런 펑크 밴드 중 하나였을 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무명 밴드 그린데이가 변화를 맞은 것은 1994년 3집 앨범 《Dookie》를 발매하면서부터다. 《Dookie》는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그린데이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80년대 초반 이후 명맥이 끊겼던 펑크 음악의 부활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1970년대 펑크 음악가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Dookie》의 주제는 마약, 좌절, 연애 등이었다. 이른바 펑크 정신이라 불리는 저항정신은 그닥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린데이의 인기는 엄청났고, 뒤이은 앨범 《Insomniac》도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했다. 후속 앨범 《Nimrod》은 빌보드 차트 10위, 《Warning》은 4위의 성적을 거두며 나름대로 인기를 유지했다. 

  그린데이는 2000년 발매 앨범 《Warning》에서 조금씩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알 고어가 경쟁했다. 당시 그린데이는 고어를 지지했고, 이를 음악에 반영했다. 암스트롱은 2020년 1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Warning》 수록곡 <Minority>에 대해 “나는 부시와 고어의 대선 직전에 이 곡을 썼다”며 “당시 정치가 보수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Minority>는 지금도 그린데이의 대표곡이자 그들의 정치성향을 잘 나타내주는 곡으로 꼽힌다. 

 
 

 ‘나는 소수자가 되고 싶어. 나는 네 권위 따위 필요 없어. 도덕적 다수파도 반대야. 왜냐면 나는 소수자가 되고 싶으니까. 나는 지하세계에 충성할 것을 맹세해. 개 아래 있는 국가에 나 홀로 서있어. 군중 속 얼굴은 틀에 박혀있어서 알려지지도 않아.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한명을 선발하는 거야.’ - <Min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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