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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n 05.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빌리 조 암스트롱③

'전쟁보다는 평화를' 미국을 흔든 펑크의 부활

  시간이 흘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막바지를 향해갔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후보로 나섰다. 이때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피로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오바마의 우세가 점쳐졌다.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암스트롱도 당연히 오바마를 지지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대통령 당선자는 오바마였다. 암스트롱은 2008년 7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 목구멍에 있는 응어리가 나오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린데이는 《American Idiot》에 이은 또 다른 걸작 《21st Century Breakdown》을 2009년 발매했다. 《American Idiot》에서 보여준 컨셉 앨범의 특징을 이어갔고, 사회 비판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사회문제가 21세기가 되도록 해결이 안 됐다는 것이 《21st Century Breakdown》의 핵심주장이다. 암스트롱은 이 앨범에 대해 “우리 주변에는 악의적 조작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그걸 이해하려고도 한다. 그게 정부, 종교, 미디어 또는 어떤 형태의 권한에 의한 것이건 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묘사다”라고 설명했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지쳐간 미국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그린데이에 열광했다. 《21st Century Breakdown》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그래미상 최고의 록 앨범상까지 수상했다. 앨범 발매 후 그린데이는 홍보를 겸해 월드투어를 진행했고, 2010년 1월 첫 내한공연까지 이뤄졌다. 암스트롱은 “한국 관객들은 지금까지 본 가장 미친 관객들이다”라고 화답했다.

  이 시기 암스트롱은 뮤지컬 배우로도 출연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09년 앨범 《American Idiot》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American Idiot』이 만들어졌고, 암스트롱도 이 뮤지컬에 출연했다. 뮤지컬 『American Idiot』은 브로드웨이에서만 400회 이상 공연했고, 2013년에는 방한 공연까지 하는 등 나름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에는 3부작 앨범 《¡Uno!》 《¡Dos!》 《¡Tré!》를 발매했다. 스페인어로 1, 2, 3을 뜻하는 이 앨범들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였고, 가사의 주요 내용은 자기 성찰적 메시지였다. 꽤나 신선한 시도로 주목받았지만 《¡Dos!》는 빌보드 차트 9위, 《¡Tré!》는 13위에 머물렀고, 그나마 《¡Uno!》가 2위에 오르며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다. 《American Idiot》과 《21st Century Breakdown》의 폭발적인 인기와 비교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이 시기 암스트롱은 나름의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2년 9월, 그린데이는 『iHeartRadio』 공연에서 거친 욕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날 공연 주최 측은 다른 음악가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그린데이의 공연 시간을 45분에서 20분으로 줄였다. 그린데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수 있지만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고 욕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TV 전파를 타면서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암스트롱은 술을 찾는 날이 늘었고, 이에 따라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불면증 약을 복용하는가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그린데이 멤버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2013년부터는 다시 공연장에 모습들 드러냈다.

  암스트롱은 2012년 미국 대선에서도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라크 전쟁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큰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암스트롱 본인이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2014년 초에는 던트의 아내 브리트니 프릿처드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그린데이의 활동도 예전만 못했다.

  이후 2015년 4월, 그린데이는 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다시금 받게 된다. 바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린데이가 헌액된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첫 앨범 발매 후 25년이 지나야만 한다. 그린데이의 첫 앨범 《39/Smooth》가 1990년 발매됐으니 자격 요건을 채우자마자 헌액된 셈이다.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린 그린데이는 점차 골치 아픈 사회운동 대신 팬들과의 소통을 즐기는 삶을 보냈다. 2015년 크리스마스 때는 유튜브를 통해 곡 <Xmas Time of the Year>를 공개하는 팬서비스까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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