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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n 11.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오지 오스본②

헤비메탈의 태동, 냉전 시대를 관통한 기행

  《Paranoid》 발매 후 미국에서도 블랙 사바스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 젊은이들이 갈망했던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친 음악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1971년 1월, 블랙 사바스는 첫 미국 공연을 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고, 《Paranoid》도 빌보드 차트 12위까지 올랐다. 후속 앨범 《Master of Reality》 《Vol. 4》 《Sabbath Bloody Sabbath》 등도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며 블랙 사바스는 레드 제플린 부럽지 않은 월드스타에 등극했다.  

  하지만 블랙 사바스의 간판 오스본은 망가지고 있었다. 그는 1971년 처음 약물을 접한 후 약물을 찾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물론 그 당시 음악가들의 약물 복용은 일상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오스본은 그 차원이 달랐다. 애초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오스본은 약물로 정신력마저 약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다른 멤버들이 곡을 써와도 오스본은 그 곡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고, 어쩔 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1977년 아버지 잭 오스본이 사망하면서 오스본의 정신 건강은 더욱 황폐해졌다. 블랙 사바스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온 것이다. 

  1977년 말, 오스본은 재충전을 위해 잠시 블랙 사바스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차기 앨범 녹음을 시작하려던 블랙 사바스는 플리트우드 맥 보컬 출신인 데이브 워커를 영입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을 뿐 블랙 사바스와 결별할 생각이 없었던 오스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블랙 사바스는 워커 보컬 체제로 방송에 출연하는 등 새출발을 하려 했지만 오스본이 복귀를 희망하자 이내 오스본 보컬 체제로 다시 전환해 앨범 《Never Say Die!》를 발매했다. 

  그러나 한번 틀어진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고, 앨범 작업 중에도 멤버들 간 크고 작은 다툼이 이어졌다. 1978년 『Never Say Die!』 투어를 진행하는 등 활동은 이어졌지만 예전 같은 팀워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인지 《Never Say Die!》는 영국 차트 12위, 빌보드 차트 69위라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때까지 블랙 사바스의 앨범 중 영국 차트 10위권 안에 진입하지 못한 앨범은 《Technical Ecstasy》뿐이었고, 블랙 사바스의 앨범이 빌보드 차트 60위 안에 들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결국 오스본은 《Never Say Die!》를 마지막으로 블랙 사바스를 탈퇴했고, 블랙 사바스는 레인보우 보컬 출신인 로니 제임스 디오를 새로운 보컬로 영입했다. 디오 영입 후인 1980년, 블랙 사바스는 앨범 《Heaven and Hell》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9위, 빌보드 차트 28위를 기록하면서 예전 영광을 약간이나마 회복했다. 

 
 

  한편 탈퇴한 오스본은 자신만의 철학과 음악성을 담은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블랙 사바스에서 탈퇴한 상황에서 그를 받쳐줄 연주가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이때 오스본이 모집한 멤버는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 베이시스트 밥 데이슬리,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 3명으로 당시로서는 모두 무명의 연주가들이었다. 이렇게 1980년 발매된 오스본의 앨범 《Blizzard of Ozz》는 영국 차트 7위, 빌보드 차트 21위라는 성적을 거두면서 근소하나마 《Heaven and Hell》을 앞섰다.  

  하지만 팬들이 《Blizzard of Ozz》에서 주목한 건 차트 성적이 아닌 가사 내용이었다. 오스본은 <Goodbye to Romance>에서 “내가 말할 게. 친구들이여 안녕. 과거도 안녕. 내 생각에 우리는 끝에 가서야 만날 거야”라며 블랙 사바스와의 작별을 고했다. 또 <Crazy Train>을 통해 블랙 사바스 시절 제대로 하지 못한 반전운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 끝났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냉전의 후계자들이 되고 있어. 물려받은 문제들 때문에 나는 정신적으로 마비됐어. 미쳤어. 난 이제 참을 수 없어. 나는 불공평한 무언가와 살고 있어. 심리적 상처는 치료되지 않아. 누구를 그리고 뭐를 비난해야하지? 나는 미친 기차 위에서 탈선했어.’ - <Crazy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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