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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n 20.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마빈 게이①

모타운발 흑인의 반란, 소울 음악의 정석

  19세기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일약 미국을 대표하는 산업도시로 떠올랐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본사가 디트로이트에 있었고, 자동차 산업 성장에 힘입어 디트로이트도 20세기 초 미국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로 성장했다. 동시에 오갈 곳 없는 흑인들이 디트로이트에 몰려들었고 인종 간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흑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와중에도 나이트클럽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음악인이 되려는 사람 역시 적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디트로이트에 기반을 둔 음반 제작 회사 모타운이 있었다. 흑인 음악에 있어서 모타운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질 정도다. 

  1950년대 후반,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베리 고디는 디트로이트에서 재즈 전문 음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디는 지역 음악가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고, 음악적 감각도 있었는지 작곡을 해주기도 했다. 이후 고디는 평소 친하게 지낸 가수 스모키 로빈슨과 의기투합해 탐라 레코드라는 음반 제작사를 만들었고, 1960년에는 다른 레이블을 통합해 모타운 레코드를 설립했다. 

  스모키 로빈슨은 밴드 미라클즈를 조직한 후 모타운을 통해 싱글 <Shop Around>을 발매했다. <Shop Around>는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는 대히트를 치며 앞으로 모타운의 시대가 올 것을 예고했다. 미라클즈는 이후에도 빌보드 차트에 자주 이름을 올렸지만 아쉽게도 1위를 차지한 적은 없었고, 사실 <Shop Around>를 뛰어넘는 성적도 내지 못했다. 

  모타운의 다음 흥행 타자는 슈프림즈였다. 슈프림즈는 1964년 싱글 <Where Did Our Love Go>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Baby Love>와 <Come See About Me> 등 1964년에만 3개의 곡을 1위에 올렸다. 1965년에도 <Stop! In the Name of Love> <Back in My Arms Again> <I Hear a Symphony> 3곡이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슈프림즈는 1960년대 무려 12개의 빌보드 1위곡을 만드는 등 그야말로 비틀즈와 비견될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모타운은 소속 음악가들은 대부분 흑인이었다. 고디 본인부터가 흑인이었고, 슈프림즈의 무지막지한 성적에서 볼 수 있듯 리듬앤블루스(R&B)와 소울 등 흑인 음악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음악은 현실적으로 흑인이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고디의 사업능력도 모타운의 성공 배경으로 꼽힌다. 그는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알고 있었고, 그런 곡들을 꼽아서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다보니 모타운 소속 음악가들에게서 사회성 짙은 음악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몇몇 음악가들이 개인적으로 인권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자선 공연을 여는 수준이었다. 

  당시 모타운은 슈프림즈와 스티비 원더가 대중적인 슈퍼스타로 모타운의 흥행을 주도했지만 언제까지 이들만 믿고 갈 수는 없었다. 슈프림즈의 플로렌스 발라드가 1967년 고디와의 갈등 끝에 팀을 탈퇴한 후 슈프림즈도 서서히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런 모타운의 분위기에서 나타난 새로운 스타가 바로 마빈 게이다. 게이는 1961년 모타운에서 데뷔해 1965년 싱글 <How Sweet It Is (To Be Loved by You)>가 빌보드 차트 6위까지 오르는 등 나름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슈프림즈나 스티비 원더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이는 학창시절 각종 밴드에서 보컬을 맡은 인기 있는 학생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집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1956년 참다못한 게이는 가출을 택해 공군에 입대했으나 군 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군대의 엄격함에 적응하지 못한 게이는 결국 정신병이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중도 제대하게 된다. 제대 후 게이는 친구들과 두왑(1950년대 유행했던 R&B 스타일 음악) 보컬그룹 마퀴즈를 조직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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