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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l 31.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조 스트러머③

암울한 영국 사회에 나타난 펑크의 영웅

  섹스피스톨즈와 클래시 덕분인지 1970년대 후반 런던에서 인기 있다는 음악가는 대부분 펑크 음악가들이었다. 대표적인 영국 펑크 음악가로는 엘비스 코스텔로가 꼽힌다. 코스텔로는 모범생 같은 외모로 반항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고, 다른 펑크 밴드에 비하면 그닥 시끄러운 음악도 아니었다. 그러나 코스텔로는 특유의 풍자로 영국 보수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코스텔로의 노래 <She>가 영화 『Notting Hill』에 삽입되면서 한국에서도 코스텔로의 이름은 나름 알려졌다. 

  댐드는 섹스피스톨즈, 클래시와 더불어 영국의 3대 펑크 밴드로 거론된다. 댐드의 당시 차트 성적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 덕에 공연은 항상 만원이었다. 클래시와 마찬가지로 댐드도 사이키델릭 등 다른 장르 음악을 적극 받아들여 포스트펑크의 중흥을 이끌었다. 이밖에 버즈콕스, 999 등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국은 그야말로 펑크 세상이었다. 

   섹스피스톨즈 해체 후 영국 펑크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단연 클래시였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클래시의 인기를 반영해 1980년 영화 『Rude Boy』가 개봉했다. 영화 내용은 한 클래시 팬이 꿈도 희망도 없이 살다가 펑크 밴드 매니저가 된다는 것이다. 클래시 멤버들도 영화 내 RAR 공연, 《Give 'Em Enough Rope》 녹음 등의 장면에서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클래시와 펑크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82년 헤로인 중독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드러머 히든이 탈퇴하고, 옛 멤버 테리 차임스가 클래시에 재합류했다. 평소 분위기메이커를 담당하던 히든의 부재는 멤버 간 불화로 이어졌다. 내분 끝에 차임스는 1983년 US페스티벌을 앞두고 다시 탈퇴했다. 공연을 앞둔 클래시로서는 난감해졌고, 젊은 드러머 피트 하워드를 부랴부랴 영입해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US페스티벌은 사실상 클래시의 마지막 영광이었다. US페스티벌이 끝난 후 클래시는 별 다른 활동이 없었고, 멤버 간 불화와 무관심만 가득했다. 1983년 9월, 스트러머와 시모넌은 존스의 탈퇴를 요구했고, 존스는 미련 없이 클래시를 나와 제너럴퍼블릭이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스트러머는 기타리스트 닉 셰퍼드와 빈스 화이트를 새로운 멤버로 영입해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했다. 

  클래시는 1985년 앨범 《Cut the Crap》을 발매하면서 클래시의 부활을 준비했지만 이미 예전 같은 위상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새로운 멤버들이 존스만큼의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의욕도 열정도 사라진 스트러머는 1986년 초 멤버들과 상의해 클래시의 해산을 결정했다. 

  클래시가 해산할 무렵 펑크의 열기도 거짓말처럼 식어버렸다. 영국의 경제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개혁으로 어느 정도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고, 유명 펑크 밴드들은 하나 둘 은퇴하거나 해체됐다. 펑크의 부활과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던 스트러머는 자존심을 죽이고 존스를 찾아가 재결합을 요청했다. 존스는 당시 제너럴퍼블릭에서 나와 빅 오디오 다이나마이트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이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스트러머와 존스가 같은 밴드로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곡 녹음에 도움을 주는 등 관계는 어느 정도 회복했다. 


  클래시가 해체되고 펑크의 인기도 사라지자 스트러머는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86년 영화 『Sid and Nancy』의 사운드트랙 녹음에 참여해 <Love Kills> <Dum Dum Club> 등의 곡을 선보였다. 이어 1987년 영화 『Walker』와 『Straight to Hell』에서 스트러머는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는 동시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이외에도 1988년 영화 『Permanent Record』의 사운드트랙 녹음에 참여했고, 1989년 『Mystery Train』 1990년에는 『I Hired a Contract Killer』에 출연하는 등 영화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 

  스트러머는 『Permanent Record』 사운드트랙 작업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백밴드 ‘라티노 로커빌리 워’와 음악적 재기를 시도했다. 훗날 펄 잼의 멤버로 유명해지는 잭 아이언스도 당시 라티노 로커빌리 워 소속이었다. 스트러머가 1989년 발매한 앨범 《Earthquake Weather》의 백밴드는 라티노 로커빌리 워였고, 프로듀싱은 스트러머가 직접 맡았다. 간만에 발매한 앨범이기에 기대가 컸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쉽게도 차트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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