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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Aug 13.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존 레논②

비틀즈의 전설 그리고 미국과의 정면 승부

  베드-인 시위는 1969년 5월에도 이어졌다. 당초 레논은 뉴욕에서 시위를 할 계획이었지만 미국이 레논의 입국을 불허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1968년 레논이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레논은 바하마로 향했지만 형편없는 호텔 시설에 실망했고, 다시 캐나다 몬트리올로 목적지를 바꿨다. 

  몬트리올의 베드-인 시위는 암스테르담 때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됐다. 1969년 5월 26일, 레논과 요코는 퀸 엘리자베스 호텔 방 4개를 잡고 기자들을 맞이했다. 때로는 전화로 미국 언론사와 접촉하거나 전 세계에 베드-인 시위를 중계하기도 했다. 베드-인 시위 마지막 날인 1969년 6월 1일, 레논은 호텔방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노래 <Give Peace a Chance>를 녹음했다. 레논과 토미 스마더스가 기타를 잡았고, 요코는 탬버린을 흔들었다. 1969년 7월 싱글로 정식 발매된 <Give Peace a Chance>는 영국 싱글 차트 2위, 미국 빌보드 차트 14위에 오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모두들 말하지. 혁명, 진화, 자위, 채찍, 규제, 통합, 명상, UN, 축하. 우리가 말하는 모든 건 평화의 기회를 달라는 뜻이야.’ - <Give Peace a Chance> 

 
 

  레논의 이 파격적인 시위는 한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그런데 통신이 발달하기 전이어서 그랬는지 당시 한국 언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베드-인 시위를 해석했다. 레논의 팬이라면 하루 종일 웃을 내용이지만 언론의 무책임함이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원문 그대로 당시 기사를 소개한다. 

 
 

 ‘영국 비틀즈 단원 존 레논 군과 그의 일본인 신부 오노 요꼬 양은 26일 침대에 들어가면서 암스텔탐에서 어린이를 잉태하기 위해 잠자리에 7일간 머물겠다고 선언했다.’ - 1969년 3월 26일 『매일경제신문』 

 
 

 ‘최근에 결혼한 비틀즈의 존 레논 군과 일본인 신부 오노 요꼬는 해프닝쇼를 벌이기 위해 25일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기자들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20세기의 가장 노골적인 사랑의 장면을 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논 군은 “사랑은 부끄러워할 것이 못되는데 왜 감추지…”라고 말하면서 “쇼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마 사랑의 분위기 속에 도취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 1969년 3월 27일 『조선일보』 

 
 

  아무튼 베드-인 시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1969년 12월, 레논과 요코는 베드-인 시위의 마지막으로 ‘전쟁은 끝났어요. 당신이 원한다면’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옥외광고를 전 세계 12개 도시에 내걸었다. 

  레논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일 동안 비틀즈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고, 결국 1970년 4월 해체되고 만다. 비틀즈 해체 후 각 멤버들은 본인의 솔로앨범을 내면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과 레논의 차이점이라면 그는 음악을 사회운동의 수단으로 사용할 정도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비틀즈 해체 후 발매된 레논의 첫 솔로 앨범 《Plastic Ono Band》는 그의 사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레논은 <Love>에서 평화와 인류애의 사랑을 강조했고, <Working Class Hero>에서는 영국의 계급제도를 비판했다. 이밖에 <God>에서는 예수, 부처 등 종교와 히틀러, 케네디 등 정치인을 모조리 부정했다. 이때 레논의 사상은 한마디로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로 정의된다. 

  레논은 영국인이었지만 1971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미국에서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펼쳤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레논의 행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런저런 견제가 이어졌지만 레논은 아랑곳하지 않고 1971년 두 번째 솔로 앨범 《Imagine》을 발매해 보다 직접적으로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I Don't Wanna Be a Soldier>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을 실패자, 목사, 도둑 등에 비유했고, <Gimme Some Truth>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외곬수로 표현했다. 가사에 등장하는 ‘트리키 디키’는 닉슨 대통령의 별명이다. 

 
 

 ‘단정한 머리에 노란 방울이 달린 닉슨의 아들 녀석은 나한테 아첨하는 하버드 아줌마가 될 거야. 희망으로 가득한 주머니와 함께 말이야. 마약할 돈 도박할 돈. 말없이 잘난 척하는 엄마의 맹목적 애국주의자. 나는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아주 지긋지긋해. 내가 원하는 건 진실이야. 진실을 말해줘.’ - <Gimme Som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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