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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Aug 24.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노엘 갤러거①

비틀즈의 부활?…브릿팝을 이끈 영국의 반항아

  1994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비극적으로 삶을 끝내자 얼터너티브 록으로 대표되던 대중음악계도 혼란에 빠졌다. 펄 잼, R.E.M. 등 얼터너티브 록 음악가가 분전했지만 대표 주자인 코베인의 부재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음악 팬들은 힘이 빠진 얼터너티브 록이 아닌 새로운 음악을 원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등장한 음악이 바로 브릿팝이다. 

  브릿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다. 브릿팝을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1990년대 중반 영국의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뭐가 됐건 코베인의 사망 후 영국을 중심으로 브릿팝이 대중음악 주류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서는 비틀즈의 부활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브릿팝은 대체로 기타를 사용한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우울한 내용도 적지 않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곤 한다. 2000년대 들어 펑크를 재해석한 장르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도 브릿팝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브릿팝 음악가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그룹으로는 오아시스가 꼽힌다. 오아시스는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형제가 이끄는 밴드로 라이벌 밴드 블러와의 경쟁, 갤러거 형제 간 다툼 등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다. 오아시스는 한편으로 루저를 자처하면서 노동 계급을 대변했다. 당연히 그들은 영국 노동당 지지자였고, 노동당 역시 오아시스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오아시스의 시작은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맨체스터의 불량아였던 갤러거 형제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록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엘 갤러거는 1989년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로드매니저로 취직해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로 진출했다. 인스파이럴 카페츠는 1983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밴드로 매드체스터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꼽힌다. 매드체스터는 1980년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유행한 음악 장르로 록에 신디사이저와 댄스 음악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리암 갤러거는 1991년 더 레인이라는 밴드에 보컬로 가입해 정식으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얼마 가지 않아 더 레인은 오아시스로 밴드 이름을 변경했고, 형인 노엘 갤러거가 기타리스트로 합류했다. 

  모든 밴드가 그렇듯 오아시스도 처음에는 클럽 공연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한 성질 했던 갤러거 형제는 공연 기회를 달라면서 클럽 사장들과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 기회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1993년 5월, 오아시스의 공연을 본 앨런 맥기 크레에이션 레코드 대표가 그들에게 계약을 제의한 것이다. 얼마간의 트레이닝과 녹음 작업을 거친 후인 1994년 8월, 오아시스는 크레에이션 레코드를 통해 첫 앨범 《Definitely Maybe》를 발매했다. 이미 1993년부터 오아시스의 입소문이 널리 퍼져있었고, <Supersonic> <Shakermaker> <Live Forever> 등 싱글을 발매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기에 《Definitely Maybe》의 흥행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Definitely Maybe》는 발매 직후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영국 시장을 장악했다. 『New Musical Express』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것은 덤이다. 어렸을 적 문제아로 악명이 높은 갤러거 형제였지만 의외로 곡들은 밝은 분위기였고, 가사도 낙관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특히 모든 곡의 작곡을 담당한 노엘 갤러거의 멜로디가 돋보였다.  

 
 

  《Definitely Maybe》의 성공 후 오아시스는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갤러거 형제는 노동 계급 출신으로 소위 잘난 사람들을 싫어했다. 사람이 잘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갤러거 형제 입장에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한 주제에 남에게 가르치려드는 모습은 꼴불견이었다. 1995년 4월 발매한 싱글 <Some Might Say>는 갤러거 형제의 생각이 잘 표현돼 있다. <Some Might Say>에서 등장하는 ‘누군가’는 소위 금수저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오아시스는 이미 인기 영국 음악가 반열에 올라섰기에 <Some Might Say>는 손쉽게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오아시스의 당시 드러머 토니 맥캐롤은 <Some Might Say>를 마지막으로 밴드를 탈퇴했다. 탈퇴라기보다는 맥캐롤의 드럼 실력에 불만을 가진 노엘 갤러거가 사실상 쫓아낸 것에 가까웠다. 후임 드러머로는 앨런 화이트가 합류했다. 

 
 

 ‘누군가는 말하지. 천둥이 치면 햇빛이 든다고. 빛날 수 없는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해보라지. 누군가는 말하지. 우리는 깊이 생각하면 안 된다고. 오늘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고. 누군가는 말하지. 더 밝은 날이 올 거라고. 나는 기차역에서 비를 맞으며 교육의 필요성을 생각했어. 내가 이렇게 유명해지리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 - <Some Might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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