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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19.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밥 딜런④

격변하는 미국 사회, 포크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지향점 제시

  어떻게 보면 딜런이 사회운동 최전선에 섰던 건 아니다. 사실 그가 집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다. 일각에서는 딜런의 매니저 알버트 그로스맨의 홍보 전략이 맞아 떨어졌을 뿐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딜런의 거친 목소리, 시적인 가사 등을 내세우고 인터뷰는 최소화하면서 일명 신비주의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1966년 딜런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목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단순히 오토바이에서 균형을 잃어 넘어졌을 뿐이라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사고 당일 인근 병원에서 구급차가 출동했다는 기록도 없다. 딜런 스스로도 2000년대 이후로는 본인의 부족함을 수차례 인정했다. 

  하지만 딜런의 행보가 진심이었든 홍보 전략이었든 대중이 그에게 열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집회 현장에서 딜런의 음악이 흘러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크 음악은 격변의 1960년대를 지낸 대중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고, 그 중심에 선 딜런의 역할은 미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딜런의 영향을 받은 가수도 한둘이 아니다. 딜런이 포크록을 시도한 후 버즈, 사이먼 앤 가펑클, 소니 앤 셰어, 마마스 앤 파파스, 도노반 등 여러 가수들이 포크록을 연주해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딜런의 영향을 받은 덕인지 반전운동에 앞장섰고 소수자를 응원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딜런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다른 가수들이 그의 뜻을 세상에 대신 전달한 셈이다. 포크록의 대표적인 반전 곡으로는 버즈의 <Draft Morning>, 사이먼 앤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와 <7 O'Clock News/Silent Night>, 도노반의 <The War Drags On> 등이 있다. 

  딜런은 누구보다 팬들을 사랑하는 음악가였다. 그는 1988년부터 2019년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Never Ending Tour』라는 이름의 세계 순회 공연을 다녔다(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2010년과 2018년 『Never Ending Tour』에는 한국도 포함됐다. 2016년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유도 단순히 그의 가사가 예술적이어서가 아니다.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의 평을 들어보자. 

 
 

 ‘딜런의 노래는 시민운동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정의의 원동력이 됐다. 셀마 몽고메리 행진의 시위대들은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딜런의 노래는 워싱턴 대행진 당시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서두에도 등장했다. 이러한 영향력이 딜런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었다. 2016년 노벨상은 비범한 삶의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 2016년 12월 10일『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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