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흑인만 한다고? NO!" 백인 랩퍼의 반란
《The Slim Shady LP》 발매 후 데보라 넬슨은 에미넴을 상대로 10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종적으로 받은 돈은 2만 5000달러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이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반항, 디스가 일상인 힙합계에서는 이러한 에미넴의 행동에 환호했다. 이어진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는 그 열기를 반영하듯 빌보드 1위에 올랐고, 이번에도 그래미상 최고의 랩 앨범상을 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번에도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싱크,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 가수들을 상대로 이유 없는 디스전을 펼쳤다. 이런 에미넴의 행보를 비판하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닌 그저 개인적인 감정에 따른 힙합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랩의 역사에서 에미넴의 보수적인 함성은 낯선 지역을 경작하는 것과 같다. 자기혐오를 내세우는 그의 음악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들이 환호한다. 에미넴 이전 갱스터 랩퍼들은 그들의 적을 향해 공격했지만 경찰이나 정부 같은 기관에 한정된 것이었다. 에미넴의 경우에는 그가 혐오하는 모든 사람, 심지어 그의 팬들까지 해당한다. 이는 그를 매우 재밌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듣기에는 우려가 된다.’ - 2000년 6월 18일 『The Guardian』
에미넴 입장에서 백스트리트 보이즈 같은 보이그룹은 그저 소속사에서 만든 상업적 사기꾼들일 뿐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시작한 에미넴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상대였다. 그는 가진 것 없이 시작해 거물이 된 사람을 대변하려 했고, 출발선부터 앞섰던 사람들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물론 언론이나 평론가들은 에미넴의 깊은 속사정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에미넴에게는 음악가로서 자신의 개성과 생각을 이해해주지 못한 채 광대처럼 쇼만하라는 식으로 들렸다. 에미넴이 2002년 발매한 앨범 《The Eminem Show》는 그런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였다. 세상이 자신에게 쇼를 원한다면 내 방식대로의 쇼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에미엠은 2002년 7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은 빌어먹을 쇼와 같다”며 “내 인생은 지금도 혼란스럽지만 당신들은 나를 혼란스러운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앨범의 컨셉이야 어쨌든 에미넴의 성격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Cleaning Out My Closet>에서는 어머니 넬슨을 다시 디스했고, <Without Me>에서는 림프 비즈킷, 모비 등 동료 음악가들을 디스했다. 《The Eminem Show》는 이전과 달리 미국 정부까지 디스 대상에 포함시켜 사회적 문제까지 다뤘다. 당시는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미국이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에미넴 역시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대놓고 특정 인물을 디스하는 대신 특유의 풍자로 비판했다. 정부에 대한 디스는 인물에 대한 디스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배트맨이 그의 로빈을 데려온 것 같아. 맙소사. 사담이 그의 전용기와 개인 조종사와 함께 라덴을 데려왔어. 대학 기숙사 문을 경첩 째로 날려벼려. 오렌지, 복숭아, 배, 자두, 주사기. 부릉 부릉. 내가 왔어. 나는 너한테 몇 인치 떨어져있으니 무서울 것 없어. 힙합은 9·11 상태야.’ -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