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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Oct 02.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에미넴④

"힙합은 흑인만 한다고? NO!" 백인 랩퍼의 반란

  2000년대 후반 에미넴은 순수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디스로 얼룩진 에미넴을 그리워하는 팬이 여전히 적지 않았다. 디스 본능이 잠재된 에미넴도 조용히 살 사람이 아니기는 했다. 에미넴의 디스 본능을 일깨워준 건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둔 2016년 10월, 에미넴은 <Campaign Speech>를 발표해 과거보다 더 강력한 디스전을 펼쳤다. 

 
 

 ‘트럼프가 꼭두각시처럼 알랑거리지 않는다고 하지. 왜냐면 그는 자신의 돈만으로 그의 공약을 지키기 때문이야. 그게 네가 원하는 거지. 그 빌어먹을 알 수 없는 인간은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 - <Campaign Speech> 

 
 

  에미넴은 트럼프를 ‘망할 출마자’라고 표현하는 등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그의 디스는 멈추지 않았다. 과거 부시 대통령을 강력하게 디스하지 못해 후회가 남았는지 내일이 없을 것처럼 트럼프를 디스했다.  

  이때쯤 에미넴은 차기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에미넴의 행보를 살펴보면 트럼프를 디스하기 위한 앨범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앨범 발매 직전인 2017년 10월, 에미넴은 ‘베트 힙합 어워드’에 참석해 트럼프를 프리스타일 랩으로 디스했다. 에미넴은 이날 트럼프의 북핵 대응 방침, 인종주의 논란 등을 다뤘다. 두 달 후인 2017년 12월에는 기다리던 앨범 《Revival》이 발매됐다. 앨범에 수록된 곡 <Like Home>에서는 트럼프를 나치와 히틀러에 비유하며 탄핵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Untouchable>에서는 트럼프의 인종 관련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2018년에 발매된 차기 앨범 《Kamikaze》에서도 트럼프 디스는 이어졌다. 앨범 제목은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을 연상시키지만 일본군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곡은 없다. 다만 전체적으로 군국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건 맞다. 트럼프뿐 아니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그에 동조하는 언론들까지 디스 대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조 버든, 머신 건 켈리 등 다른 힙합 음악가들도 에미넴의 디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에미넴은 왜 트럼프를 싫어했을까. 정치성향이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지금껏 에미넴이 특정 정치인을 이렇게까지 디스한 적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거침없고 지나치게 직설적인 모습이 음악가들 특유의 반항심을 자극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를 비판하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 발언을 별로 하지 않았던 폴 매카트니 조차도 트럼프를 비판하는 앨범 《Egypt Station》을 발매했을 정도다. 

  에미넴은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Lose Yourself>의 라이선스를 양보했다. 에미넴이 친 민주당 성향을 보인 적은 딱히 없었기에 반 트럼프 연대에 참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Lose Yourself>는 바이든 선거 광고에 삽입됐고, 에미넴의 기대대로 바이든은 미국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에미넴의 음악적 완성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Revival》이나 《Kamikaze》나 모두 빌보드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빌보드 연말(Year-end) 차트에서는 각각 32위, 17위에 머물렀다. 과거 무조건 10위 안에 들던 것과는 비교되는 성적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화제성을 위해 트럼프를 디스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에미넴의 2020년 앨범 《Music To Be Murdered By》는 한층 성숙해진 그의 모습을 보여줬다.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에미넴 보디가드 등 에미넴 답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평론가들의 음악적 평가는 높았다. 에미넴도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과거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랩을 시도한 것이다. 20대의 에미넴은 사고뭉치였다면 30대의 슬럼프를 거쳐 40대에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음악가로 거듭났다. 50대의 에미넴이 다시 슬럼프를 거칠지 팬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전적으로 에미넴 그리고 그를 둘러싼 미국 사회에 달려있다. 에미넴이 마구잡이 디스 랩퍼가 아닌 사회의식을 가진 랩퍼로 변신한지는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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