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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Oct 11.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마이클 스타이프①

밑바닥에서 시작해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적 밴드로 우뚝

  1990년대 초반 대중음악계는 너바나와 펄 잼을 필두로 한 얼터너티브 록 열풍에 휩싸인다. 유행이란 것은 항상 변화하기 마련이므로 사람들의 관심이 헤비메탈에서 얼터너티브 록으로 옮겨간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장르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부족했을 뿐, 이미 1980년대부터 적지 않은 음악가들이 얼터너티브 록을 연주해왔다. 

  얼터너티브 록은 디스토션 사운드를 중심으로 단순한 코드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은 음악이기에 스타일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헤비메탈이 인기가 높았던 시절 이 정체불명의 장르가 눈에 띄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1세대 얼터너티브 록 음악가가 모두 묻힌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정상급 인기를 누린 얼터너티브 록 밴드도 있다. 대표적인 밴드가 R.E.M.으로 이들은 얼터너티브 록의 시작과 전성기를 함께한 그야말로 얼터너티브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R.E.M.의 작사를 담당한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쓰면서 사회운동가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았다. 

 
 

  R.E.M.의 결성은 우연히 이뤄졌다. 1979년 한 음반점 아르바이트생인 피터 벅은 취미로 기타를 쳤지만 전문 음악가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음반점 단골손님이었던 스타이프는 벅을 자주 만나면서 음악에 대한 대화도 자주 나누게 됐다. 마침 두 사람은 같은 조지아대학교 출신이었고, 서로의 생각이 비슷해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역시 조지아대학교 출신인 드러머 빌 베리와 베이시스트 마이크 밀스를 영입한 후 밴드 이름을 R.E.M.으로 정했다. R.E.M.은 Rapid Eye Movement. 즉 빠른 눈 운동의 약자로 대단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전을 보고 아무 단어나 골라서 정한 것이다. 이때가 1980년 초였다. 

  R.E.M.은 동네 밴드로 시작한데다가 대형 음반사와 계약한 것도 아니기에 불러주는 곳도 없었다. 친구 생일파티 공연, 동네 교회 축제 등에 참여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길도 있다고 R.E.M.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동네 클럽 무대에도 오르기 시작했다. 

  1981년 7월, R.E.M.은 첫 싱글 <Radio Free Europe>을 발매했지만 의미 있는 차트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사실 조지아에서 R.E.M.의 인지도는 점점 오르고 있었지만 <Radio Free Europe>이 힙-톤이라는 인디음악 전문 레이블에서 발매됐기에 전국적으로 홍보되지 못했다. 힙-톤은 발매한 음반이 10개도 채 되지 않았고, 1980년대 중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곳이지만 <Radio Free Europe>을 발매했다는 이유로 음악 팬들 머릿속에 남을 수 있게 됐다. 

  R.E.M.은 I.R.S.라는 레이블로 옮겨 EP 《Chronic Town》을 발매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지만 조지아 밖을 벗어나면 무명일 뿐이었다. 1983년 발매된 첫 앨범 《Murmur》도 20만 장 남짓 팔릴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수천만 장 판매된 것을 생각하면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물론 음악팬들이 아주 외면한 것은 아니라서 《Murmur》는 빌보드 차트 36위라는 데뷔 앨범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Radio Free Europe>도 발매 2년 만에 빌보드 차트에 진입해 78위까지 올랐다. 

  그런데 시장의 반응과 달리 언론과 비평가들은 《Murmur》에게 좋은 평가를 한 수준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앨범급으로 대접했다. 심지어 『Rolling Stone』은 1983년 《Murmur》를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했다. 경쟁작이 《Thriller》, 폴리스의 《Synchronicity》, 데이비드 보위의 《Let's Dance》 등임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발표였다. 『Rolling Stone』은 1983년 12월 당시 “R.E.M.의 가사는 난해하지만 흥미롭고 에너지 넘치는 기타 라인이 《Murmur》와 <Radio Free Europe>을 만들어냈다. 이 앨범은 올해 최고의 음악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Rolling Stone』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 등 1980년대를 풍미한 음악가들은 『Rolling Stone』 올해의 앨범에 선정된 적이 한 번도 없고, 1988년에는 다소 생소한 호주 음악가 미드나이트 오일의 《Diesel and Dust》가 선정됐다. 그런가 하면 R.E.M.은 《Murmur》에 이어 1991년과 1992년 《Out of Time》과 《Automatic for the People》로 2년 연속 올해의 앨범에 선정됐다. R.E.M.의 앨범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바나의 《Nevermind》를 제칠 수준인지는 의문이 따른다. 여하튼 언론 덕에 당시 마니아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R.E.M.이 한순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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