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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19.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짐 모리슨②

히피의 상징, 따라갈 수 없는 반항아

  모리슨은 반항아 기질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날뛰었고, 마이크를 집어던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리슨의 모습이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다른 가수들의 들러리로 시작했던 도어즈는 어느새 공연 헤드라이너로 대접 받았다. 당시 모리슨의 일과는 밤새 술 먹고 늦잠을 잔 후 산책을 하다가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이었다. 망나니와 같은 삶이었지만 자극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그런 모리슨의 모습에 열광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모리슨은 언론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도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언론을 활용했다. 그는 공연 전에 항상 어떤 기자가 왔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쓰는 기사의 주요 독자층을 파악했다. 모리슨의 인터뷰는 진지할 때도 있었고, 미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평소 시를 좋아한 덕분인지 인터뷰를 할 때 인용구를 자주 사용했고, 언론도 모리슨의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자주 사용했다. 일종의 상부상조 관계였다. 

  모리슨이 밑도 끝도 없이 반항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반전운동에 앞장섰다. 대표적인 곡이 <The Unknown Soldier>로 도어즈는 이 곡에서 뮤지컬처럼 노래를 부르며 연극을 해댔다. 단순히 반전만 외치는 게 아니라 가사에 기승전결을 표현한 모리슨다운 곡이었다. 

  <Five to One>은 이보다 더 심오한 곡이었다. 모리슨 본인은 이 곡에 대해 언급한 적이 많지 않지만 언론과 비평가들은 갖가지 해석을 했다. 대표적인 해석이 미국 내 백인과 흑인의 비율이 5 대 1이라는 것. LA 시민들은 5 대 1의 비율로 마리화나를 피운 다는 것 등이다. 해석이야 어떻든 모리슨은 <Five to One>에서 “그들은 총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다수야”라고 외치며 자신이 히피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그러면 우리는 둘 다 나이가 들 거야. 이름 모를 군인이여. 뉴스를 보면서 아침을 먹고 아이들을 먹이면서 TV를 봐. 태어나지 않은 삶, 삶과 죽음. 총알은 헬멧을 쓴 머리를 관통해. 모든 게 끝났어. 이름 모를 군인이여.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중대 섯. 받들어 총.’ - <The Unknown Soldier> 

 
 

  모리슨의 음악은 반항의 음악이면서 분노의 음악이기도 했다. 그의 일상 자체가 분노였고 무대 위에서 그 분노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1967년 12월, 모리슨은 여느 때처럼 무대 뒤에서 여자와 밀회를 즐기다가 그만 경찰에게 들키고 말았다. 모리슨은 무대 바깥으로 나가라는 경찰의 요구에 불응했고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그날 모리슨은 무대 위에서 “조그만 파란 모자를 쓴 조그만 파란 놈. 조그만 파란 돼지 같은 놈”이라며 경찰을 욕했고, 결국 그는 무대 위에서 체포당해 1500달러를 내고 나서야 풀려났다. 

  1968년 1월에는 한 주차장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지나가는 경비원을 놀려댔다. 당연히 싸움으로 번졌고,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꼼짝없이 체포됐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보석금을 내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모리슨은 경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파티장으로 향했다. 이날 파티에는 가수 존 데이비드슨과 재니스 조플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니스 조플린과 짐 모리슨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는 196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히피 음악가들로 이른바 3J라고 불린다. 조플린과 헨드릭스는 모리슨 못지않은 특이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날 파티에서 모리슨은 조플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놀았고 조플린은 위스키 병으로 모리슨의 머리를 때렸다. 본인들끼리는 장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심각하게 바라보며 그들을 떼어 놓았다.   

  1968년 3월에는 모리슨과 조플린, 헨드릭스 3J가 모여 잼 세션을 펼쳤다. 다들 평범하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정상의 실력자들이 모였으니 그만큼 주변인들의 기대도 컸다. 그렇지만 모리슨의 정신세계는 다른 두 사람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모리슨은 가사를 자기 맘대로 지껄이며 뛰어다녔고 헨드릭스는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지켜봤다. 이 때문인지 헨드릭스는 공연을 함께 하자는 모리슨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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