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해석되지 않으면 나를 묶고, 해석되면 나를 살린다
이혼을 결심해도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죄책감,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를 흔든다.
이러한 감정이 밀려올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저 기분이 안 좋고, 우울하고, 답답할 뿐이다.
감정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감정을 끝까지 파헤쳐 보는 것이다.
차분히 앉아 글로 써보자.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끝까지 따라가 본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감정의 원인이 보이고, 해결의 실마리도 그려진다.
무엇보다 감정의 ‘뿌리’를 찾으면, 그 감정은 나를 휘두를 힘을 잃는다.
감정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무섭다, 미안하다, 슬프다.”
이 말들은 감정의 표면일 뿐이다.
그 안에는 훨씬 더 많은 문장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그 문장을 꺼내 써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무섭다 → 왜 무서울까?”
“나는 미안하다 →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슬프다 → 무엇을 잃었기 때문에?”
슬픔의 대부분은 상실감에서 온다. ‘왜 슬픈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천천히 떠올려보자. 나는 15년동안 내 모든것을 쏟아 만든, "우리"로 이루어진 가정이 해체되어 이제는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으며 미래에도 우리의 가정은 존재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매우 슬펐다. 즉, 나의 슬픔은 내 가정의 상실이 하나의 원인 이었다.
이것은 내 친할머니의 죽음과 아주 똑같은 구조로 슬펐다.
예시 1. 두려움
두려움은 ‘무섭다’는 한마디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글로 써보자.
나는 혼자 있는 게 무섭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할까봐 무섭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해 아이들을 부양하지 못할까봐 무섭다.
나와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릴까봐 무섭다.
돈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아이들이 나를 원망할까봐 무섭다.
집에 도둑이 들까봐 무섭다.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내가 곁에 없을까봐 무섭다.
이 정도 쓰면 ‘무섭다’는 감정의 구체적인 이유가 보인다.
그럼 이제 스스로의 컨설턴트가 되어
하나씩 해결책을 제안해보자.
나는 혼자 있는 게 무섭다.
→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있고, 부모님과 동생이 있다. 가끔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면 된다.
요즘은 월 2만 원 정도면 홈 보안 서비스로 현관과 집 내부에 CCTV를 설치할 수 있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알림을 받을 수 있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을 때는 바로 보안업체에 연락할 수 있다.
작은 장치 하나로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할까봐 무섭다.
→ 아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다.
안전한 동선을 함께 만들고, 귀가 여부를 CCTV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일할 수 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수입이 있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수입이 줄어들까봐 불안한 건 세상 모든 가장의 공통된 걱정이다.
나만의 문제로 확대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부양하지 못하고 길에 나앉을까봐 무섭다.
→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하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겁먹기보다. 지금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자금 계획을 세운다.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관리하고, 대출과 상환을 배우며 필요한 순간에는 ‘빌릴 줄도 아는 용기’를 갖는다.
그리고 돈을 배우자. 돈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나와 아이를 지키는 무기로 여겨야 한다.
돈이 없어 무시당하거나 아이들이 나를 원망할까봐 무섭다.
→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바꾸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러니 그 부분은 완전히 포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벌고, 관리하고, 불리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보험을 들어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에 대비한다. ‘예방 가능한 서러움’은 준비로 줄일 수 있다.
집에 도둑이 들까봐 무섭다.
→ CCTV와 보안을 강화하고, 나머지는 내려놓는다. 도둑은 내 집만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상상하는 것이 예측인지 망상인지 구분부터 하자. 망상이라면 멈추자.
아이들이 사고를 당할까봐 무섭다.
→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반복하고 엄마 외에도 두세 명의 비상 연락처를 알려준다. 단 정말 믿을 수 있는 어른을 비상처로 가져가야한다. 나의 경우는 나의 친정 아빠와 내 남동생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운에 맡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은 통제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렇게 감정을 끝까지 파헤치면,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감정 속에서도 해결 가능한 부분과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 명확히 구분된다. 결국 해법은 단순하다.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돈을 공부하고, 홈보안 서비스를 활용하고, 아이들과의 안전망을 구체화하는 것.
실행 가능한 작은 행동이 두려움을 줄인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감정들도 파헤쳐본다.
나는 두려움뿐 아니라 죄책감과 슬픔도 세밀하게 분해해 보았다.
결국 이렇게 정리되었다.
두려움은 아이들과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욕구였다.
죄책감은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슬픔은 사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며 새로운 희망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감정을 파헤치다 보면, 그 감정이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신호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도 여러분의 감정을 끝까지 뿌셔서 그 안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전감을 되찾는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