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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YOUR FATHER Feb 15. 2017

임신한 남편의 할리우드 액션

임신한 아빠의 생존 tip



축구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공격수들이 상대의 위험 지역 즉 ‘페널티지역’에서 과한 액션을 취하며 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혀 아플 것 같지 않은데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선수들도 있고, 상대와 접촉이 있었던 것은 발인데,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선수들도 있다. 주로 TV 중계를 통해 장면을 접하는 축구팬들의 경우 ‘다시 보기’ 덕분에 충돌의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그라운드에서‘다시 보기’를 할 수 없는 심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다소 과한 액션. 상대 수비수와의 접촉이 전혀 없었거나, 반칙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할 상황이 아닌데, 심판의 눈을 교묘하게 잘 속이는 선수들의 행동을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부른다. 마치 할리우드의 액션 배우처럼 거짓을 진실처럼 잘 꾸며대는 이들이다. 주심이 만약 휘슬을 불 경우 페널티킥으로 이어져 팀에 득점을 안길 수 있다. 승리로 이어지는 결승골이라면 ‘액션배우’로 변신한 해당 선수는 팀의 영웅이 될 수 있다. 물론 위험한 행동이다. 할리우드 액션을 매우 잘 활용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가끔 날카로운 심판에게 걸리면 오히려 ‘경고’를 받기도 한다. 이미 경고를 받은 선수라면 ‘퇴장’으로 이어져 팀의 역적이 된다.‘할리우드 액션’은 노련한 선수들만 과감하게 행할 수 있는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 


2009년 가을. 출장길에 올랐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이메일을 열어보라”라는 아내의 ‘지시’는단호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노트북을 펼치려 했지만, 같이 출장을 떠났던 일행들은 “빨리 밥을 먹으러 가자”라고 성화를 냈다. 지시사항 이행은 잠시 뒤로 미뤘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아내에게 끊임없이 문자가 왔다. “메일 봤어?” “아니. 아직 밥 먹는 중” “언제 들어가?”“아직 한창” 같은 대화가 몇 차례 이어지고 아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밥을 도대체 몇 시간을 먹냐, 기내식 안 먹었냐…” 범상치 않은 내용의 이메일이 왔음이 분명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 여열 어본 이메일은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다만, 선명한 두줄이 새겨진 임신테스트기의 이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임신을 확인한 아내는 당장 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창 러시아 상공을 날고 있던 터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친정엄마에게 연락했다. 딸의 임신 소식을 들은 장모는 당장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둘은 부둥켜안고 ‘1차’ 감격을 나눴다고 한다. 그러고는 임신 소식을 들을 나의 반응을 기대하며 ‘2차’ 감격의 순간을 꿈꿨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나란 ‘놈’은 작두를 타지 않는 이상 그런 아내의 속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긴 비행 끝에 찾아온 허기가 괴로웠고, 빨리 밥을 먹고 호텔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 이메일을 열어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당시의 감정을 묻고는 한다. 하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훅’ 다가왔으니 그럴 만했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임신이라는 상황 앞에 노련함을 과시할 수 있는 선수가 이 세상에 있을까? 보통의 남편들이라면 쉽지 않을 일이다. 첫 아이의 임신이 벌써 5년 전의 일이지만 아내는 종종 “그때의 기분이 어땠냐”라고 묻는다. 매번 조금씩 다른 대답을 내놓는 탓에 아내는 그때마다 히죽 웃고 또 가끔은 삐죽 입을 내밀기도 한다. 처음의 감정이란 평생 여운으로 남는 그런 것이다. 


연예시절 혹은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 수 없이 경험하며 남자가 체득한 한 가지는 ‘여자는 남자보다 감정적이다’는 보편적 사실이다.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여자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꽃집을 찾은 남자가 고민 끝에 꽃을 주문하고, 행인들의 시선을 뚫고 자신에게 올 장면을 떠올리고, 한 손은 팔짱을 끼고 또 다른 한 손은 꽃을 들고 길거리를 걸으며 받는 시선에서 행복을 느낀다. 임신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의 아내는 평소보다 더 감정적이다. 가슴 벅참과 동시에, 자신의 몸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불안함에 휩싸이게 된다. 


남편의 역할은 단순하다. 다소 과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아내라는 확신을 주는 일이다. 과하게 할리우드 액션을 펼쳐도 상관없다. 역적이 되거나 경고, 퇴장을 받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충분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평생 원망 거리를 만들 수 있다. 비록 공정함에는 가끔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심판은 바로 아내다. 


Tip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당신

첫 임신 소식을 접한 순간. 아내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면 성공적이다. 감정표현이 서투르거나 무뚝뚝한 스타일 탓에 이미 ‘그 순간’을 놓쳤다고 걱정하지 말자. 평생 아내는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당신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하자. 딱히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자주 이야기하면 좋은 말이다.


[ 이 글은 맘앤앙팡(http://enfant.designhouse.co.kr/) 2016년 2월호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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