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아빠의 생존 tip
오랜만에 장거리 출장길에 올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열 한 시간, 환승 대기 다섯 시간, 다시 영국 맨체스터까지 두 시간이다. 총 18시간에 이르는 장도다. 출장지에서는 또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한숨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축구 경기장에 가야 한다. 유명한 전직 축구 선수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한 명을 만나면 다른 도시로 이동해 다시 또 다른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녹취한 인터뷰를 글로 옮겨야 한다. 행여나 먼 길을 왔는데, 약속이 일그러지지 않을지, 녹음기나 노트북, 카메라가 말썽을 부리지 않을지, 출장에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힘든 출장이지만 설레는 순간은 존재한다. 바로 공항 출국장에 설 때다. 월요일 아침 비행기인 탓에 공항은 인파로 가득하다. 언제나 다양한 감정으로 가득한, 만남과 이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항이다. 꽃봉오리가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공항에는 벌써 봄 내음이 가득하다. 토요일과 일요일 예식을 마친 신혼부부들이 아침 일찍 신혼여행길을 재촉하는 탓이다.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다. 7년 전, 신혼여행을 떠나던 시절의 설렘이 다시 샘솟는다.
또 다른 한 켠에는 임신한 배를 살포시 감싸고 있는 임산부와, 행여나 다칠세라 잔뜩 긴장한 채 아내의 짐을 듣고 있는 예비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태교여행을 떠나는 부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공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이제는 해외 태교여행은 ‘대세’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요즘은 현지에서 임산부 맞춤 마사지까지 제공하는 ‘임산부를 위한 패키지’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태교여행을 떠나는 부분들은 대부분 시끌벅적한 관광지보다 여유로운 휴양지로 향한다. 굳이 공항이 아니더라도 블로그, 카페, SNS를 둘러보면 태교여행 ‘인증샷’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찾아왔다.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다들 떠나는 태교여행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아직 임신 초기이기에 당장은 여행을 떠날 상황은 아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떠날 기세란다.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에 아내에게 ‘무엇이든 말만 하라. 다 해주겠다’고 했지만, 후배는 썩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보수적인 집안 어른들도 한 마디씩 할 것 같고, 매달 통장을 스쳐가는 월급도 걱정이다. 시기상 당장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란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하루 종일 어디로 태교 여행을 떠날지 즐거운 고민이다. 남들이 다녀온 후기를 살펴보며 흥분하고, 이미 해외로 태교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단톡방’에서 보낸 사진을 보며 부러워한다. 남편에게 주말 밤마다 홈쇼핑 채널에서 소개하는 가까운 여행지들은 미운 대상이다. 이번 주도 물건 좀 판다는 쇼호스트가 나와서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외치며, ‘이런 구성의 상품은 절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핏대를 세운다. 당장 결제 없이 예약만 진행하고, 주중에 상담 전화를 통해 취소나 일정 변경을 할 수 있단다. 상담문의만 남겨도 추첨을 통해 선물까지 준다니 일단 예약만이라도 하자며 아내는 채근이다.
기대와 상상으로 한껏 행복한 아내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일이다. 후한이 두렵다. 혹시나 해서 집안 어른들의 분위기만 살폈더니 ‘노발대발’과 ‘적극 찬성’으로 의견이 갈린다.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갈린다. 대부분 산부인과 의사들은 초기와 말기만 아니라면 주치의의 권고 하에 무리하지 않은 여행, 비행기 탑승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의사들은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한다. 결국 선택은 부부의 몫이다. 아내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본인의 주장을 내세울 것 인가. 어려운 문제다. 정답은 아니지만,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생각하면 나름 힌트가 보인다.
당장의 여행보다 중요한 것은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새롭게 태어날 새로운 아이와 함께하는 긴 인생의 여행이다. 임신한 아내의 건강과 주머니 사정상 무리하지 않은 태교여행이라면, 그깟 며칠간의 짧은 여행은 임신 10개월, 그리고 출산 후 수년 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아내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물론 무조건 해외로 며칠씩 떠나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진짜 ‘태교여행’은 굳이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임신한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얼마 남지 않은 둘 만의 시간을 웃음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다. 뱃속 아기에게도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를 가득 들려준다면, 그보다 좋은 태교는 없다.
Tip -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아내와 감정을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하자. 짧은 외출도 여행이다. 연애 시절 자주 들렀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혹은 둘 만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떠나보자. 출산 용품을 준비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쇼핑에 나서는 것 역시 좋다. 동네 마트, 백화점, 주민센터 등에 개설된 ‘부부 출산교실’, ‘예비엄마 아빠교실’ 등에서 아내와 함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가져보자. 아내뿐만 아니라 아빠를 위한 태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 이 글은 맘앤앙팡(http://enfant.designhouse.co.kr/) 2016년 4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