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냐 아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랜만에 본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빛바랜 앨범을 펼쳤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오늘도 정신없이 우리 집 거실을 뛰어노는 개구쟁이들의 DNA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다. 어머니는 “아빠를 닮았지 누구를 닮았겠냐”며 핀잔을 준다.
오래된 앨범 한 켠에는 막내아들인 내가 딸에게나 어울릴 법한 뽀글 머리를 하고 ‘엄마표 수제 원피스’를 입은 사진이 한 장 있다.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희미하지만, 당시 뽀글 머리도 싫었고, 치마를 입는 것도 싫어 꽤나 실랑이를 했던 기억은 뚜렷하다. 어머니는 새우깡으로 나를 설득했다. 사진을 한 장만 찍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타협했다. 사진 속 나의 표정은 불만 반, 수줍음 반이다. 또 한 번은 친척 누나에게 줄 선물을 샀다며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한다며 나에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힌 적이 있다. 사진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극렬히 저항하다 결국 백기투항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다행이다.
어머니는 아들만 둘이다. 장가를 갈 때가 되어서야 알았지만 딸이 있는 집이 부러우셨다. 막내였던 탓에 나름 애교도 있고, 여전히 살갑게 굴고 있지만, 어머니는 요즘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딸을 하나 낳았어야 하는데, 난 목매달이야”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인지 둘째 손주로 딸을 안겨드렸을 때 유난히 기뻐하셨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남아선호의 풍토가 깊은 우리 사회이지만, 요즘은 많이 변했다. 첫째 딸, 둘째 아들은 금메달, 첫째 아들, 둘째 딸은 은메달, 딸만 둘이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매달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요즘은 딸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딸 바보’라는 단어까지 생겼으랴.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성별에 대한 기대를 담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기대는 각각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딸 바보’라는 타이틀을 한 번쯤 가져보고 싶기도 하고,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아들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어떤 모습이라도 기분 좋은 상상이다. 상상은 혼자의 몫이 아니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 예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모두 각자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 사실 10개월 후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성별에 대한 기대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는 가정의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개월 동안 예쁜 것만 보고, 행복한 생각만 해도 모자랄 임신한 아내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일부러 성별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다림을 더욱 설레게 만드는 나름의 방법이다. 출산 전후를 막론하고 기대했던 성별과 다르다고 아내와 가족들에게 마음을 표출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성별에 대한 집착 혹은 요구는 아내에게 죄책감과 패배감만 안기는 스트레스 덩어리일 뿐이다.
굳이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아들 혹은 딸을 낳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남편이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한 번씩 들어본 이야기겠지만, 정자에 있는 X혹은 Y염색체가 성별을 결정하는 열쇠다. 아내의 난자와 만나는 정자가 X염색체라면 딸, Y염색체라면 아들이다. X염색체나 Y염색체를 구분해 난자에게 보내는 남편 혹은 염색체를 구분해 받아들이는 난자를 가진 아내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탓’ 아니 ‘덕분’이라는 말이다.
남편의 역할은 단순하다. 임신 소식을 처음 접한 마음 그대로. 아내가 탈 없이 10개월의 여정을 소화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건강한 아이와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아내의 편이 되면 된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또 어떠하랴. ‘행복한 우리 가족’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 땅에 부러울 이는 없다.
Tip - 아내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세요
가끔 예비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다른 가족의 구성원이 성별에 대한 기대를 표출할 때도 있다. 은근하면 다행, 과도하면 부담 혹은 상처다. 심한 경우에는 첫 아이로 딸을 출산한 산모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는말 보다 “어서 몸 추스르고. 둘째는 아들 낳아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경우도 있다. 출산 후 만신창이가 된 산모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말이다. 남편의 역할은 아내를 위한 ‘방패’다. ‘마누라 바보’가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하자. 혹시 예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심상치 않은 반응이 나올 것 같다면, ‘염색체 이론’이라도 꺼내 들고 ‘모두 내 탓’이라고 선제공격을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 이 글은 맘앤앙팡(http://enfant.designhouse.co.kr/) 2016년 5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