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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Aug 14. 2021

그거 한물 간 게임 아니야?

싸구려 도발에 넘어가지 말자. 침착하게,여유 있게.

무엇이든 '한물 간 게임'이 될 수 있다. 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패션일 수도 있다. 가끔은 진로, 가치관처럼 굵직한 것이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 됐건 내가 선택한 무언가를 타인이 쉽게 평가 내리는 순간을 우리는 마주할 때가 있다. 음, 한물갔네요. 땅땅.


주위 사람들에게 유난히 박한 평가를 받는 나의 취미가 있었으니... 그게 포켓몬 고다. 

첫 시작은 호기심과 추억 때문이었다. 증강현실이라는 게 대체 뭘까, 이 게임을 하면 나도 최첨단 시대에 적응하는 인간일까 싶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하던 노래가 아직도 목구멍 속에 담겨있기도 했다.


포켓몬 고의 등장에 열광한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속초에서만 포켓몬 고가 가능하던 시절, 많은 이들이 속초로 떠났고 나 역시 속초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포켓몬 트레이너의 길은 험했으니, 가장 큰 적은 익숙함이었다. 많은 이들이 떠났고 나는 포켓몬 트레이너의 삶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유행 지난 게임이겠지만 내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첫째, 이동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 게임이다. 포켓몬을 잡으려면 문자 그대로 내가 잡으러 '가야' 한다. 게임 한 번을 위해 돌아다녀야 한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자. 교통수단 발달의 한계로 인간이 이동에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독서, 음악 감상, 영화 보기 등 여러 방법으로 그 시간을 가꿔왔다. 나에게는 그게 포켓몬 고였다. 책은 꼭 버스에서 읽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포켓몬 고는 버스를 필요로 한다! 평일 출퇴근 시간은 더 이상 자본주의에 굴복한 인간의 처연한 대이동이 아니었다. 그건 포켓몬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었다.


둘째, 성실함으로 승부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어제 페이커 무빙 지리지 않았어요?'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페이커의 무빙이 지리기 위해서는 아무나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없어야 한다. 이런 류의 게임에서는 게임 능력, 이를테면 민첩성, 섬세한 컨트롤이 숭배받는다.

물론 페이커도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 고에서 말하는 성실함은 '나를 갈고닦아 더 나은 실력자가 되는' 그것과는 다르다. 얼마나 나무를 아름답게 깎아내느냐가 아닌 몇 개나 장작으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이른바 노가다가 최고의 덕목이다. 


무식하게 많이 잡으면 경험치가 오르고 아이템이 생긴다. 원하는 포켓몬이 있다면 나올 때까지 잡으면 된다. 그런 단순함 때문에 이 게임이 싫다는 사람도 있다. 고인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지 않냐는 사람의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땀방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 때문인지 고령 유저가 많은 이 게임이 좋다.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여기까지가 내가 포켓몬 고를 좋아하는 굵직한 이유다. 문제는 내가 이런 설명을 매번 늘어놓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세상에 의사와 교사가 참 많다'는 말이 있다. 다들 병원과 학교를 가본 적이 있어서 쉽게들 아는 체를 한다는 뜻이다. 포켓몬 고가 그렇다. 모두가 피카츄를 알고 포켓볼을 안다. 이러한 특수성 덕인지 몇몇  질문들을 받는다. 각 단골 질문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지 정리해보자.






"그거 한물간 게임 아니야?"

[상대와 이야기할 때는 부정적인 내용을 뺀다.]

내 마음속 십계명이다. 카네기가 말했듯, 아무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 관련된 일에 별로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이를 환영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데에 있다.


예전에는 '상대방은 재밌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한물갔다고 표현하는 배려심도 없고 뭣도 모르는 XX'에 몰입해 한 몸 바쳐 그들 물어뜯었다. 너의 생각이 틀린 데다가 공감능력이 저급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 인생을 걸 기세였다.

사람은 발전하는 법. 누군가를 멍들게 하는 일이 내 인생에 별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켓몬 고와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포켓몬 고가 한물갔다고 했지 내가 한물갔다고 한 게 아니지 않나. 경험들은 내게 적당히 맞장구치고 넘어가는 지혜를 주었다.

옛날의 영광에 비하면 인기가 시들해진 것 맞다. '한물갔다'의 기준은 주관적인데 그의 기준에서는 포켓몬 고가 한물갔단다. 아, 그렇구나. 끝.


"그거 일본 거잖아. 불매운동 안 해?"

시대적 특징이 담겼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 창의성에 처음에 들었을 때는 당황했다.

이럴 때는 그러게~ 하고 넘어가는 게 최고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아직 불필요한 계몽가 기질이 남아있다.

"포켓몬 고는 나이언틱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게임인데, 그 회사는 미국 꺼야."

대표 이름은 행크이고 닌텐도와는 또 다른 회사라는 이야기까지 하면 과한 덧붙임이 될까 봐 자중하고 있자면 반응은 둘로 나뉜다.


"아, 그래?"

"일본 캐릭터인데 그래도 상관있지."

전자의 경우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했고, 이제 궁금증이 해소된 사람이다.

후자는 처음부터 포켓몬 고를 사용하고 있는 내가 못마땅했거나 자신의 지식이 반박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의 지식'과 '나'가 분리되지 못한 사람이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진실과 상관없이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까칠하게 나올 확률이 높으므로 인지해두자. 물론 나 역시 평소에 과도하게 발끈하는 부분은 없는지 타산지석 삼는다면 더욱 완벽.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뉘앙스에 따라서 이 질문은 다른 의도를 가진다.

비언어적 행동에 못마땅한 느낌이 담겼다면 그건 '아직까지도 그런 게임을 하고 싶냐, 정신 차려라'류의 지적이다. 놀라움, 호기심이 주 감정이라면 게임이 정말 재미있는지 궁금하거나 어떻게 한 게임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냐는 감탄이다.

사람이기에 들은 말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따지게 되지만, 거기 휩쓸리는 건 삼류다. 우리는 불완전한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자. 평소에 못마땅했던 사람은 같은 말을 해도 고깝게 들린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라서 평소보다 과하게 반응하는 때도 있다. 

모든 질문은 직역이 좋다. 숨은 뜻을 해석하려고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응 재밌어! 깔끔하게 대답하자. 필요하다면 상대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추가적인 발언을 할 것이다.

(감정 전달)와, 나는 같은 게임 1주일이면 질리던데 대단하다야.

(비난) 그냥 포켓볼 던져서 몬스터 잡는 게 다 아니야? 뭐하러 해 그런 걸.

어떤 쪽이든 그때 반응해도 늦지 않다. 에너지를 아끼자. 이런 일에 사용하기는 너무 아깝다.




질문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듣는 레퍼토리들이 추가로 있다. 

"야, 포켓몬 고 같은 거 하고 다니면 남자 친구 안 생겨."

연애, 결혼이 인생의 필수 과제라고 생각하며 더 나은 짝을 찾기 위해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이런 말들에 흔들리지 말자. 내 취미가 불륜, 살인이던가? 합법적이라면 어딘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래의 파트너 때문에 나를 바꾸는 건 어리석지 않을까. 


"핸드폰 잃어버리면 사라질 거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이런 염세주의적 철학자 같으니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것들을 중시 여기는 신념의 소유자이다. 감정, 행복과 같이 금방 사라질 수 있는 것보다 돈, 부동산처럼 언제고 옆에 있는 실물이 더 낫다고 여기는 그를 나는 존중한다. 그는 그러지 못했지만.



둘 다 대처법은 비슷하다. 내 인생을 봤을 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싸구려 도발들에 굳이 넘어가지 말자. 발끈해서 싸우는 건 에너지 낭비요 그렇다고 네 말이 맞다고 인정하며 살기에는 짜증이다. 뭐든지 중용이 중요하다.

네 성대에서 만들어 낸 공기의 진동이 내 귀에 닿았다, 나는 청력이 이상이 있지 않으므로 이를 감지했다는 것만 알려주면 된다. 나는 보통 3가지 문장을 돌려쓰는 편이다. 이 마법의 문장을 당신에게도 추천한다.

"아, 진짜~?"

"그렇구나~"

"음~"


※주의※. 비꼬듯이 하지 말 것. 상대의 감정 상하게 하기가 목적이었으면 각 잡고 싸웠다. 영혼 없이, 건조하게 가자.





결국 가만히 들어보면 모두 가치관의 차이다.

알찬 삶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물론 상대의 생각에 대한 존중이 없을 경우 혼나야겠지. 그런데 혼내기에는 우리 역시 경찰도 뭣도 아니다.

욱 하지 말고 그냥 더 당당해지자. 안 좋게 보자면 세상 모든 일은 한심하게 볼 수 있다. 축구는 공 한 개를 두고 굳이 발만 써가며 원하는 곳으로 보내려고 뛰어다니는 22명과 그걸 90분씩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인파들의 모임이요, 독서는 정해진 글자를 해독해 그 글자가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는 눈이 나빠지고 근손실이 오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신의 취미에 자신감과 애정을 갖기를. 다른 이의 생각으로 나를 흔들지 말자.

그리고 다짐하자. 나 역시 다른 이의 생각에 함부로 형용사를 붙이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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