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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Sep 05. 2021

인정받지 못함을 인정하자

김춘수의 '꽃'을 통해 보는 내 마음속 어린 나

"너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안 했어?"

참고로 내가 앞에 한 말은 '다녀왔습니다'였다.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이 대화를 이해하려면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

교회에서는 기도를 드릴 때 끝에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이 붙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대표기도에서 나는 무려 예수님의 이름을 빼먹고는 아멘을 읊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교회가 소문이 빠르다지만 벌써 집에 있는 엄마까지 알 줄이야.

'권사님, 권사님 딸이 오늘 예배 때 글쎄....'

예상되는 카톡 내용이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세상에, 유명해지는 거 별 거 아니구먼.


"너 오늘 대표기도라며, 엄마가 유튜브로 봤지."

다행히도 출처가 단톡방은 아니었다. 안도하는 동안 엄마의 비평은 끊이지 않았다.

너는 기도의 기본도 안 되어있느냐, 누가 보면 안 믿는 집에서 자란 줄 알겠다 등등등.

이미 내 머릿속에도 기껏 예쁘게 포장해 놓은 기도가 하늘로 흩어지는 이미지가 선명해서 할 말은 없었다.

어엿한 성인이다. 객관적으로 잘못을 했고, 그 정도는 쿨하게, 멋있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끝나지 않는 비판 - 너의 기도는 지루하다, 쓸데없는 말이 많다 등- 앞에서 나의 연륜은 쉽게 뜯겨나갔다.


최악의 파트는 이거였다. 

내가 얼마나 많이 기도 칭찬을 받았는지 설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내 안의 아이는 여전히 어렸을 때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 그치만 저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는 걸요..."

"엄마, 그치만 저 반에서는 1등이에요..."



그놈의 엄마 그치만. 아직도 엄마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를 본다. 한심하다.

김춘수의 시가 때마침 위로를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이름이 불리기를,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내가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가 애처롭게 울 때가 있다.


이제 그 아이를 마주해 보자.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속 꿈틀거릴 수밖에 없는 인정 욕구를.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게 돼 있다.


그리고 직시해야 한다. 꽃은 결국 시들 수밖에 없음을.

타인에게 받는 인정은 그 순간 찬란하다. 그러나 나를 온전하게, 평생토록 인정해줄 수 있는 이는 없다.

(사랑과 인정은 별개의 문제이다. 당장 내 엄마만 해도 격려가 아닌 지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 않나.)

절망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둠이 두려운 이유는 어둠이 날 다치게 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가 무엇인지 몰라 불안해서이다.

벽이 손에 닿는 순간, 불안함의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인정 다음은 채움이다. 타인으로부터 채움을 받을 수 없으니 해답은 나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요, 유일무이하기에 해답을 가진 자는 당신뿐이다.

당신의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온전하게 이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풀이법은 각자에게 있다.


인정받지 못함을 인정하자.

얼른 나의 이름을 불러주자. 내 속의 아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힘차게.





덧붙이는 글)

신을 믿는 경우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다. 신은 인간과 다르게 당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랑해줄 것이다. 신이라는 존재의 설정 자체가 그렇다. 교회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달을 믿든 외계인을 믿든 상관없으니 초월적인 존재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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