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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an 20. 2022

김치를 향한 내로남불

왜 카레만 되고 파스타는 안됩니까

김치볶음밥에 김칫국을 곁들이며 밑반찬으로 김치를 먹는 일이 자연스럽다. 파인애플김치, 귤김치, 토마토김치.... 식물로 정의되는 모든 것들을 김치화 시킨다. 과연 김치의 민족답다.


김치의 나라 토박이로 자란 나는 당연하게도 김치를 좋아한다. 요즘은 배추김치 중에서도 양념이 가득 묻은 이파리 부근이 제일 맛있게 느껴진다. 그 전에는 속까지 국물이 배어 살짝 투명해진 깍두기가 그랬다. 따뜻한 국도 좋지만 시원상큼한 물김치가 땡길 때가 있다.


그런 내가 김치를 가장 폭팔적으로 먹는 날은 급식으로 카레가 나올 때다. 급식실 공기마저 노랗게 맡아지는 그날은 식판 끝 쪽의 제일 큰 반찬칸에 김치로 봉우리를 쌓아도 모자랐다. 평소의 김치가 감칠맛 나는 조연이라면 그 날은 카레와 함께 쌍두를 달리는 명실상부 주연인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주장해본다. 카레는 김치와 어울리는 최고의 음식이다. 부드러운 카레 소스를 뚫고 김치 특유의 톡톡 쏘는 맛만큼 미뢰에 자극을 주는 2인조가 또 있을까.


여기까지의 글을 읽었을 때 대부분은 '작가 양반, 수육에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모르나본데'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언정 한심함이나 저급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카레에 대해 일장연설을 적은 이유가 있다. 외국 음식을 먹으며 김치를 찾는 행동을 경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카레는 예외사항에 속하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김치를 얹어먹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시선을 보내던가.

아마 스프에 밥을 말아먹는다는 발언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타코나 감바스를 먹다가 김치를 찾는 일은 부끄러운 일, 촌스러운 입맛. 


김치 타령은 곳 촌스러운 것, 멋진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그들의 평에는 어느 정도씩은 이러한 의식이 깔려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프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린 것이다.

그럼에도 애써 질문한다.


외국의 음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열등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왜 카레는 되고 파스타는 안 됩니까? 고수를 못 먹는 사람과 레어-스테이크를 못 먹는 사람에게 보이는 시선의 온도는 왜 이리도 다른가요.


냉정히 말하자면 다수여서다. 카레를 먹을 때 김치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파스타를 먹을 때 김치를 찾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나는 이 다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려 한다. 다수의 행동은 보편적 사회인식일 수 있으나 결코 상식이나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사람들이 '상식적'이라고 여기는 판단은 말 그대로 나의 혼자만의 상식에 불과할 때가 많다.

파스타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일은 우매한 일인가? 그것은 누구의 상식인가.


스프에 밥을 말아먹는 옆 식탁의 사람을 잠시 경악스러운 눈길로 쳐다본 것이 미안한 바, 다시금 이 소중한 진리를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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