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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Feb 04. 2022

걱정을 콩나물무침으로

바구니 한가득이던 콩나물은 두 주먹 정도의 콩나물 무침이 되었다.

이 콩나물 무침을 먹으며 생각에 잠긴 것은 이번 콩나물 무침이 전자레인지를 사용해 데친 첫 시도였기 때문이 아니요, 양념이 훌륭하게 배여서도 아니다.

그렇게나 수북하던 콩나물 이천 원어치가 요리를 마치고 나니 반찬 한 통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였다.

야채 요리는 처음의 시베리안 허스키스러운 부피와는 다르게 뜨거운 물을 몇 번 맞으면 치와와로 변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콩나물은 걱정과 닮은 구석이 있다.




걱정에 사로잡혀 본 사람이라면 걱정이 당신의 삶을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나의 경우 수능을 앞두고서는 고3병으로 가위에 시달렸다. 취직과 직결된 인생에서 제일 큰 시험을 볼 즈음에는 척추가 뒤틀려버리는 듯한 큰 통증에 제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시험이 끝나자 다시는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없다.


하지만 분명 나를 신경쇠약에 걸리게 할 만큼 큰 걱정이었음에도 막상 이를 정리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거나 과장되게 상상하는 식이다. 과연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는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옛말이 맞다.


머릿속에 든 게 당장의 고민밖에 없어 괴로운 마음에 지인에게 털어놓다 보면 생각보다 내 고민이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능을 망치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을 경우 최악이라고 해봤자 1년을 더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위에 눌려 괴롭게 그날 밤을 보낸다고 성적이 오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험을 못 볼 경우 내 인생이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갈기갈기 찢긴 채 파멸할 것처럼 느껴졌다.


걱정은 아직 요리되지 않았을 때, 가공되지 않은 상태일 때 가장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막상 대화나 글을 통해 차분히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별 것도 아니다. 데쳐 놓고 나면 사소한 일 하나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과도하게 걱정하며 보냈던가.


콩나물무침을 꼭꼭 씹으며 현재 나의 걱정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요리하고 나면 얼마나 작아질지 한 번 지켜보련다.






사진 출처: https://mamamongfly.com/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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