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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Feb 26. 2022

코로나 확진 썰 풉니다

(1) 아무리 봐도 이건 코로난데

17만 1452명. 내가 코로나에 걸린 날 나온 대한민국 확진자의 수다. 이제 코로나 확진자들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이 더 이상 숨겨야 할 분위기가 아닌 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난 아직도 자가격리 중이다. 밥을 삼킬 때 아직도 목구멍이 아픈 지금의 상태에서 코로나 걸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했다. 감정이 충만한 상태에서 쓰는 글은 읽은 사람을 당황시키는 설익음을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그 장단점, 옳고 그름을 바로 판단할 수 없다. 모름지기 새옹지마의 숙성기간이 지나고 나야 올바른 판단이 서는 법이다.


그럼에도 자판을 두드려 본다. 침 삼키기를 힘들어하며 쓰는 이 글이 같은 확진자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확진자들의 가족이나 동료들에게는 간접체험을 통한 이해의 계기가 되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란다.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축구를 열심히 했나 보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한 생각은 이거였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축구를 했더니 몸이 말이 아니네, 오늘 유산소는 가볍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판단을 바꿨다. 온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 이 쓰라림은 감기 몸살의 그것이었다. 2월이면 환절기다. 이런 시기에 늦은 저녁 축구를 하고 다녔으니 충분히 감기 몸살에 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몸살의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목까지 아픈 감기몸살은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미크론 증상을 쳐보았다. 감기몸살, 인후통이 보였다. 아, 이건 코로나다. 근거는  없었지만 확신이 들었다.


보건소에 갈지 말지 고민했다. 오미크론의 경우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고 했다. 굳이 보건소까지 가서 일을 키워야 할까. 앞으로의 외출 일정들도 많은데 지금 자가격리에 걸리면 곤란했다. 결국 코로나 검사소로 향했다. 정부의 권고사항을 어기기에는 모범시민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집에서 보건소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가 걸렸다. 몸살이 난 상태로 걷기에는 멀었으나 교통비가 더 아까워 그냥 걷기로 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아악, 가볍게 신음을 읊조리며 걸었다. 다행히도 구청 앞에도 검사소가 있어 25분만 걸어도 됐다. 임시 천막에는 10분 정도 대기가 필요할 정도의 줄이 서 있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검사 인원이 많이 줄었다.

뉴스에서 얼핏 듣기로 나같이 맥락 없는 의심 증상자의 경우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PCR 검사 안내 표지판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분명 '코로나 의심 증상자'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게 나니까 줄을 섰다. 막상 입구에 서자 안내자는 내게 서류를 요구했다. 밀접접촉자라는 증거든, 신속항원검사 양성이든 어떤 증거 말이다. 그게 없으면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그럼 안내 패널의 글에는 왜 코로나 의심 증상자가 있는 걸까?

따지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나까지 불만을 표시하기에는 각종 질문에 시달리고 있는 담당자들이 충분히 안쓰러웠다.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내용을 오해하게 써둔 윗사람의 문제지.


신속항원 검사소는 딱히 줄을 서지 않았다. 약국에서는 돈을 주고 산다던데 다행히도 공짜였다. 진단키트를 들고 가림막이 있는 곳에 가서 코를 쑤시면 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살짝 헤맸으나 찬찬히 내용을 읽어보니 어렵진 않았다. 비닐장갑을 껴 한껏 둔해진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플라스틱 관을 구멍에 끼워 넣었다.

문제는 쑤실 때였다. 강아지풀처럼 생긴 면봉을 코에 밀어 넣는데 어디로 넣어야 하며 얼마나 집어넣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PCR이야 받아봤다. 그 아린 감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서 어디에 면봉을 집어넣어야 그런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제일 깊숙한 곳을 향해 면봉을 찔러 넣었다.


신속항원검사는 '신속'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했다. 말이 15분이지 5분 안에 결과가 나왔다. 테스트기의 구멍에 콧물(아이고 더러워)을 떨어뜨리면 종이가 젖으며 줄이 나오는 식이었다. C에만 한 줄, 음성이었다.

혹시나 변화가 생길까 해 기다렸지만 선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아, 음성이구나. 머쓱해졌다. 감기 좀 걸린 걸 가지고 혼자 호들갑을 피웠구나 싶었다.


지나친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한 대가는 집에 올 때도 걷는 것으로 치렀다. 몸살이 있는 상태였기에 도착하니 몸이 상당히 지쳐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헬스장에서 가서 등 운동을 한 뒤 저녁 약속을 가야 했다. 이렇게 아픈 날은 한 번쯤 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루 정도는 스스로에게 자비로워지기로 했다. 헬스는 물론이고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어떻게 약속 장소까지 나갈 수야 있겠으나 이후의 대화에 즐겁게 참여할 자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진짜로 쉬는 걸 해보기로 했다.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다가 졸리면 자는 그런 휴식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날 일어날 것을 고려해 6시 이후면 낮잠 금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 날에는 자유롭게 쉬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피곤하면 그대로 잤고, 깨면 깬 대로 침대에 앉아 책이나 유튜브를 봤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오는 쾌감이 상당했다. 홀가분한 마음 상태와는 반대로 근육은 쉬지 않고 괴로워했다. 허벅지를 중심으로 온몸이 쑤셨다. 오한이 나다가도 했고 땀을 뻘뻘 흘렸다. 이불 두 겹에 잠바를 껴입고 덜덜 떨다가도 더워서 민소매 차림으로 옷을 열어젖히기를 반복했다.


침대에서 뒤척임을 계속하면서도 참 감사하다고 느꼈다. 오늘이 출근날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내일도 휴가니까 마음 놓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었다. 오늘 출근을 했다면 퇴근은 응급실로 하지 않았을까.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는 사치는 아무나 부릴 수 없었다.

감사함과는 별개로 미련은 남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코로나였다. 감기몸살, 목 아픔, 오한까지 기사에서 말하는 코로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음성이라니. 납득이 잘 안 됐다. 신속항원검사에서는 확진자의 24%만 양성이 나온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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