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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Feb 27. 2022

목이 부어 슬픈 짐승이여(코로나 확진 썰 풉니다)

(2) 나날이 진화하는 인후통

2022년 2월 23일 수요일(2일 차)


전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휴식한 보람이 있었다. 마음껏 자고 일어나 보니 몸살 기운이 가셔 있었다. 목만이 조금 부어 있을 뿐이었다. 왜 조금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루 만에 감기몸살을 이겨낸 스스로가 뿌듯할 따름이었다.


부은 목구멍은 생각보다 걸리적거렸다. 침을 삼킬 때마다 편도는 서로 맞닿았고, 그때마다 요란하게 아팠다. 감기몸살만 나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도 헬스장에 갔고, 요리를 해먹을 체력이 생겼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때때로 느껴지는 통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딱 한 군데,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목 안쪽 빼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작은 목구멍이 나를 괴롭게 할 줄이야.

몸에 아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 교훈을 얻었으니 됐다. 내 몸의 구석구석은 참으로 소중하구나. 이제 푹 자고 일어나서 건강한 신체와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면 딱 알맞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세상일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는지 잠이 들기만 하면 목이 부어서 깼다. 건조한 목을 부여잡고 침을 몇 번 삼킨 뒤 다시 잠을 청하고, 목이 아파서 깨는 일이 2시간 단위로 반복되었다.


사람이 제대로 자지 못하면 미치는 법이다. 반쯤 혼이 나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라섹을 한 뒤로 밤에 불을 끈 채 스마트폰을 한 적이 없는 나다. 지금은 언젠가 나빠질 수 있는 눈보다 당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목이 더 급했다.

잘 때 목 건조, 목 부었을 때 대처법 등을 열심히 검색했다. 목이 아픈 것을 인후통이라고 부르는 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잠을 자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에 인터넷이 말하는 모든 일들을 실천했다. 마스크에 물을 적셔서 썼고 목도리를 둘렀다. 딱히 차이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9시만 되면 바로 약국에 가리라 이를 갈며 다짐했다.





2022년 2월 24일 목요일(3일 차)


퀭한 눈으로 약국에 달려갔다. 씻지 않은 얼굴이나 뻗친 머리카락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약사님은 증상을 듣더니 약 2개를 처방해주셨다. 이 약이 처방전 없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센 약이에요, 약사님의 이 말에 내 호소가 잘 먹힌 것 같아 마음이 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약국이 아니라 병원을 갔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잠으로 모든 신체 이상을 해결해오던 나에게 병원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병원이나 약국이나 어차피 약을 먹는 결말은 똑같을 줄 알았다. 돈도 지불했겠다, 이제 현대 의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여겼다. 식후 30분 뒤 약을 잘 챙겨 먹었고, 촉촉한 목을 위해 끊임없이 사탕을 먹었다. 실제로 목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역시 사람이 돈을 들여야 하는 구만. 나는 목감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앞두고 있었다.


목을 제외하고는 불편한 곳이 없었으므로, 저녁 약속에 나갔다. 후배 가연이는 그렇게 확진자인 나와 밀접 접촉한 유일한 피해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딱히 접촉한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여행을 가 있었고, 아빠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바로 산책을 나가는 지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만난 사람이 없었다는 건 내가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픈 지 3일 만에 처음으로 소리를 내봤다. 부은 편도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낯설었다. 성대의 모양이 바뀌기라도 하는지 말을 할 때마다 목소리가 다르게 나왔다. 가연이가 듣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말하는 데 별다른 지장은 없었다.


카페에서 시킨 패션후르츠 티는 비타민C 탕에 가까웠다. 상큼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아팠다. 단순히 따끔따끔한 정도가 아니라 목의 왼쪽 윗 천장을 칼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왠지 목이 소독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몸에 좋은 지 어쩐 지 모르겠으나,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과정을 즐겼다.


언니, 그렇게 아프면 병원을 가세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가여웠던지 가연이는 충고의 한 마디를 했다. 자기는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간다고, 삶이 불편해지는 데 뭐하러 참고 있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돈과 시간이 아까워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연이와 역으로 걸어가며 찬바람을 맞자 목 상태는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목구멍을 틔워 말을 하려고 하면 더 빠른 속도로 가래가 치고 올라와 통로를 막아 버렸다. 음음, 큰 소리를 내며 가래를 물리치고 나서 가연이에게 답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가보겠노라고, 네 말에 일리가 있다고.



침대에 눕고 나서 깨달았다. 아, 오늘도 숙면은 글렀구나. 눕기만 하면 목구멍이 활짝 열리는지 이리도 쓰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약을 먹지 않았던가. 하룻밤 자고 나면 양약의 기운을 받아 어떻게든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잠을 청했다.


오늘도 중간중간 잠에서 깼다. 목구멍이 5년 묵은 걸레가 된 느낌이었다. 목구멍을 붙이며 꼴딱 댈 힘도 이제 남지 않았다. 코와 목 사이 어딘가에서부터 콧물인지 가래인지 알 수 없는 점액이 끊임없이 뽑혀 나왔다. 처음에는 막힌 통로가 뚫린다는 생각에 좋았다. 가래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좋지 않았다. 따끔거림으로 보건대 저녁에 칼로 패이는 느낌을 받던 그곳, 왼쪽 목구멍 천장에서 피가 나고 있는 듯했다. 누워있을 수가 없어 침대에 앉은 채 눈을 감았다. 입안에서 맴도는 피맛을 느끼며 다짐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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