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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r 01. 2022

자가격리, 해보니 이렇습니다(코로나 확진 썰 풉니다)

(4) 사회적 개입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2022년 2월 26일 토요일(5일 차)


자고 일어나니 문자가 와 있었다. 양성이었다.

짐작했던 결과였다. 정작 나를 당황시킨 것은 양성이라는 검사 결과보다 어디서 코로나에 걸렸는지 예상해보라는 온라인 설문조사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심지어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는 것도 아니고 한 군데만 적어야 했다. 막막했지만 필수 답변이어서 넘어갈 수도 없었다. 마녀사냥의 주동자가 된 심정으로 그나마 가장 오랜 시간 마스크를 벗고 있었던 식당을 적었다.


전날 연락해야 할 사람, 취소해야 할 일정을 모두 정리해 두었다. 목록을 보며 하나씩 처리해 갈 때다 다이어리는 깨끗해져 갔다. 쾌감이 대단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연락을 돌리다가 마침내 가영이 차례가 되었을 때 멈칫했다. 가영이는 재수 없게도 코로나 증상이 절정에 가까울 때 나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신 후배다. 전날 운을 띄워놔서인지 가영이 목소리는 덤덤했다. 당혹스럽게도 가영이는 PCR를 받을 수 없었다. 가영이만큼 나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동거인이 아니었기에 PCR 대상자가 아니었다. 정작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 적도 없는 부모님은 검사 대상자였다. 설문지에서 검사받아야 할 밀접접촉자 이름을 적으라고 하는 편이 코로나 예상 확진 장소를 찍는 것보다 유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코로나가 걸린 뒤로 배가 별로 안 고팠다. 당기는 음식도 없고 딱히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찾아보니 식욕부진도 코로나 증상 중에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답을 먹지 말까도 생각해 봤으나 식후 30분마다 먹어야 하는 약들이 있었다. 밥 먹는 게 최고의 기쁨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챙겨 먹었다. 기분이 묘했다. 과연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다.


중간에 전화가 한 번 왔다. 보건소라고 밝힌 목소리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은지, 동거인들은 모두 PCR를 받았는지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다른 분주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는 정신이 없는지 같은 질문을 세 번씩 했다. 살짝 답답했으나 그가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번호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정부의 늦은 일처리에 대해 성토하던 수많은 기사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부디 그가 미숙한 대처 능력 때문에 정부를 대표해 욕을 먹지 않기를 바랐다.





2022년 2월 27일 일요일(6일 차)

일요일은 원래 일주일 중 제일 바쁜 날이다. 특히 이번 주 일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약속이 있었다. 합법적으로 이 모든 일정에서 벗어나 쉴 수 있었다. 그건 참으로, 매우, 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세 가지의 강조 표현들이 이 격한 기쁨을 제대로 담았길 바란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24시간은 낯설었다. 집 안에서만, 누구와도 교류를 하지 않고 하루 온종일을 보낼 수 있는 기회는 현대인에게 잘 오지 않는다. 다시없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소중한 날들을 잘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들었다.


아무런 제재와 의무가 없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처음에야 아무 생각 없이 쉬었으나, 이내 계획 없는 휴식이 불편해졌다. 오늘 꼭 했으면 하는 일들을 적은 뒤 시간 시간마다 배치했다. '5시까지 유튜브 A 영상 보기'를 적어두자 마음이 놓였다. 꼭 시간에 쫓기지 않더라도 나는 계획이 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생활 패턴은 자연스럽게 새벽 1시 30분쯤 자서 9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프리랜서였다면 이렇게 살았겠지. 9 to 6의 삶을 살던 나는 하루 세 끼, 특히 아침을 챙겨 먹는 일을 중시했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전두엽에 구멍이라고 뚫리는 줄 알았으나, 막상 살아보니 느지막이 아점을 먹는 일도 적성에 맞았다.


갑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는 행동반경이 집에서 방 하나로 줄어서가 컸다. 주말이 되자 아빠 역시 집에 있기 시작한 것이다. 거실과 주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과 꼼짝없이 어디에 앉아있어도 전체가 훤히 보이는 네모 방에 들어있어야 하는 상황은 차원이 달랐다. 전자가 자기 계발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감옥살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얼른 월요일이 되어 아빠가 직장에 가기를 소원했다.


그 무렵, 정부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한 가지씩을 들고 왔다. 좋은 소식은 내가 7만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금액은 지자체 별로 다르다). 큰돈이라고 생각했으나 주변의 생각은 달랐다. 하루에 만 원인 셈인데 네가 자영업자였으면 얼마나 타격이 컸겠냐는 엄마 말에 동의하는 바다. 만약 내가 자영업자인데 격리기간 동안 보육시설에 맡겨야 할 자식까지 있었다면 적자도 이런 적자가 없었을 것이다.

나쁜 소식은 3월부터 백신 패스가 잠정 중단된다는 보도였다. 그래도 코로나에 걸려서 좋은 점이 무기한 백신 패스권을 얻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나마 삼고 있었는데 머쓱해졌다. 




2022년 2월 28일 월요일 (7일 차)

찬찬히 내 몸을 관찰해 보았다. 가장 큰 변화는 근육량이었다. 코로나 확진 전까지 하루에 2시간씩 주 6일 운동을 했었다. 딱히 힘주지 않아도 탄탄한 몸이 내 자랑이었다. 이제는 온몸이 말랑말랑해졌다. 밀가루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에 회복 후 인바디를 재기가 두려워졌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퍼진 몸 이상이었다. 고백하자면 헬스장을 못 가게 되었을 때 옳다구나 싶었다. 운동을 쉬는 이유가 나약한 정신력 때문이 아니요 귀찮음 때문도 아니었다. 법치국가에 사는 준법시민이기 때문에 운동을 못하는 것이다. 이보다 좋은 핑계가 있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신났으나 곧 부작용이 생겼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사람이 쉽게 무기력해졌다. 근육통을 달고 살던 그 시절이 간절해졌다. 

절박한 마음으로 홈트(홈 트레이닝, 집에서 하는 운동의 줄임말)를 시작했다. 가벼운 맨몸 운동이라도 몸을  쓰니 훨씬 기분이 좋았다. 한껏 달궈진 몸속에서 땀이 빠질 때 정결 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난 운동이 좋다. 필요하다. 개로 치면 보더콜리 정도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가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헬스장이 다르게 느껴졌다. 





2022년 3월 1일 화요일(8일 차-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목이 모두 나았다. 이제는 아무리 꿀떡거려도 목구멍이 아프지 않다. 현실로 돌아갈 때가 다가옴을 느꼈다. 7일에서 8일이 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밥을 먹고 돌아다녀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가영이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영이는 나 덕분에 코로나를 피했다. 나와 밀접 접촉을 한 뒤로 찜찜한 마음에 집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 가족들과 따로 밥을 먹었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을 때 가영이만 음성이 나올 수 있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화였다.


그렇다. 인생은 언제나 새옹지마다. 코로나에 걸려서 아팠던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사회의 개입이 없는 자유 상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쉬기도 했고 말이다. 새옹지마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헬스장에 가서 무게를 조금밖에 들지 못해 실망할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로 코로나에 걸렸던 일을 다행으로 여기겠지.

삶은 계속 흘러간다. 많은 것은 변한다. 그래서 코로나 확진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을 이렇다 정의하지 못하겠다. 그저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을 기록할 뿐이다. 인상 깊은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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