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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Mar 06. 2022

가난을 선택합니다

“얘, 너는 왜 혼자 아이스크림 안 먹고 있니?”

동네 아주머니가 내게 물어왔다. 여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손에 든 게 없는 나는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았다. 돈 아까워서요. 여덟 살 어린이다운 솔직한 대답이었다. 당시 하드 바는 500원이었는데 그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목덜미가 후끈후끈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내 대답이 심금을 울렸는지 그분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다음에도 혼자 군것질을 안 하고 있으면 사달라는 뜻으로 오해하실까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돈에 집착하는 성향은 커서도 비슷했다. 밥 먹는 돈이 아까워 약속은 최대한 신중하게 잡았다. 옷은 주로 지하상가에서 샀고, 그마저도 일 년에 한두 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갈색 머리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으나 뿌리 염색을 하려면 3만 5천 원이 들었다. 그냥 검은 머리로 지내기로 했다. 기숙사에 살던 시절에는 냉동식품조차도 사 먹기가 아까워 집에서 싸온 밥과 김, 김치만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질려서 3달 만에 포기했다.


직장이 생기자 부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부업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영웅담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월급으로는 올라가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노후 대비에 대한 불안도 들이닥쳤다. 내가 늙었을 때쯤이면 국민연금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빈부격차는 앞으로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떤 계층으로 살아갈지는 지금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퇴근 후의 삶은 주식 공부, 블로그에 광고성 글쓰기와 같은 일로 가득 채워졌다.



돈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던 나를 주해준 것은 독서였다. 돈의 속성을 알려준다기에 펼쳐 든 책은 저평가된 기업의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며 그래서 얼마가 필요하냐고. 그제야 나에게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얼마를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멀리 가면 아무튼 좋은 거라고 여겼지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낭떠러지는 아닐지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여겨오던 일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왜 돈을 움켜쥐고 싶어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결국 돈에 대한 물음은 꿈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기에 돈을 필요로 할까.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면 자유와 열정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열정을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돈을 원했다. 돈이 없어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받고 싶었던 보컬 레슨을 미룬다거나 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런데 이미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 모든 도전을 미뤄왔다. 최근만 해도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표 값을 보고 반달치 월급이라는 생각에 빠르게 여행을 포기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걸까.     


본래 나는 글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느낀 것을 글자로 나타내는 일은 보람찼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세계관들을 꾸미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상상해보는 일이 즐거웠다. 안정적인 대신 월급이 적은 직업을 선택했던 이유도 퇴근 후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래, 분명 시작은 그랬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만 오면 카카오 뷰에 올릴 가십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렇게 살면 자유와 열정을 실현하는 삶은 대체 언제 올까. 죽기 10년 전에? 내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그만 꿈꾸기로 했다. 대신 지금부터 그렇게 살기로 했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면 아직도 때때로 불안하다. 불안감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튀어나와서는 나를 설득한다. 글을 쓴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세상이 대세는 NTF, 메타버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일이지 않을까. 흐름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큰돈을 만지고 있는데 나만 철부지처럼 낭만에 빠져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는다. 내 꿈을 이루는 두 가지 단어, 열정과 자유를 떠올린다. 자유롭기 위해 돈이라는 사슬에 묶여 사는 삶은 결국 후회가 남을 뿐이다. 대학시절 많은 일들에 도전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돈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날개가 되어야지 다리를 퇴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그 가치를 이루며 살고 있느냐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돈이 왜 필요했는지를 떠올려보자. 스마트폰 액정에 찍히는 숫자가 커지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었을 테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안락한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있는 삶이었다. 물론 안락한 의자, 고급 원두를 얻기 위해 돈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해 4시간만 자면서 피폐하게 사는 억만장자가 될 필요는 없다. 부디 우리가 부자라는 막연한 환상에 휩싸여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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