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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Apr 01. 2022

타고나도 하필 실수를 타고났니

열심. 참 좋은 말이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멋있다. 하지만 열심만 있으면 곤란하다. 그날 도자기 만들기 클래스에서도 그랬다. 최고의 접시를 위해 밀대로 죽어라 흙반죽을 밀었다. 팔목 힘줄이 튀어나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을 냈으나 볼록볼록 솟는 부분이 있었다. 알고 보니 밀대에 흠집이 나 있었다. 패인 곳이 있으니 힘을 준다고 될 턱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여권과 비행기 표의 영문 이름이 서로 다른데요. 이 경우 출국이 불가합니다.”

가족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비행기 예매 담당이었던 나는 심히 당황했다.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엄마의 이름은 끝 글자가 ‘아’다. 보아, 김연아는 어떤 철자를 쓰는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아’는 a였고, 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할 때 ah로 적어 버렸다. 늘 그랬듯이 내 실수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h 한 글자 더 적혀있다고 비행기를 못 타는 게 말이 되나... 엄마에게 미안했고, 이걸 굳이 찾아낸 승무원이 야속했으며, 무엇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h를 적어놓은 내가 미웠다. 대체 왜 이럴까.


실수의 역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수학경시대회에서 한 문제를 틀려 은상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25번 문제를 맞힌 학생이었으나 엉뚱하게 2번 문제인가를 틀려서 은상을 받았다. 아쉽긴 했지만 그때는 ‘25번 문제를 혼자 풀어낸 나’에 도취되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력이 되니까 만점쯤이야 언제든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수도 실력이라는 옛 말은 짜증나게도 맞았다.

  


실수는 지독하게도 잦았다. 실수로 한 번쯤은 실수를 안 할 법도 한데, 이런 것만 성실했다. 하나같이 자잘한 것들이었다. 문제의 답이 2이라고 흥분해서 2번을 적었다. 옳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옳은 것을 골랐다. 다 아는 내용들이었는데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12년 동안 꾸준하게 실수했다. 그렇게 수능날 사회탐구의 마지막 다섯 문제를 OMR 카드에 한 개씩 밀려서 써내는 거창한 실수를 하며 학창시절을 마무리했다. 공부 덜하고 실수 안 하는 애들이 더 효율이 좋겠다는 엄마의 한마디가 가슴을 때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실수하는 성향은 그대로였다. 조별 과제 단톡방에 동명이인의 다른 학교 사람을 초대하기도 했고 발표날 usb를 놓고 와서 학교까지 엄마를 불러내는 불효를 저지르기도 했다. 시험 점수처럼 숫자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민폐인 정도를 생각하면 이게 더 끔찍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가 가족여행을 못 갈 뻔한 대형사고를 쳤다. 다행히도 설득과 약간의 도박이 먹혀 콜로세움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난 어딘가 오류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흠집이 난 밀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구멍이 나 있으니 아무리 힘을 줘서 반죽을 펴도 자꾸만 볼록하게 솟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자기혐오는 거기까지. 엉성하게라도 밀대의 빈 부분을 채워줘야 했다. 그동안의 실수들을 분석해보니 보통 생각이 혼자서만 빠르게 지나가버려 문제가 생겼다. 일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서는 다음 할 일을 시작해버리니 빠뜨리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그동안 저지른 실수들을 정리한 뒤 일을 마무리하기 전 오답노트를 보고 하나씩 점검했다. 방을 떠날 때 고데기 전원을 껐나 확인하기. 카카오톡에서 글을 전달할 때 카톡방 이름 두 번 확인하고 보내기. 집을 나가기 전에 문 앞에서 꼭 필요한 물건 외워보고 잘 챙겼나 확인하기.


절반 정도 성공했다. 실수는 거기서 거기였고, 자주 놓치는 부분만 신경 쓰면 크게 사고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 한동안은 다시 실수투성이로 지냈다. 새로운 일은 새로운 실수를 의미했다. 메일에 쓸 말을 고르고 수정하다가 정작 파일은 빼고 보낸다거나 열심히 표를 채워 놓고는 ‘(홍길동)보고서’와 같이 파일 제목을 고치지 않고 메신저를 보냈다. 못마땅하게 여기던 어리바리한 신입의 모습이어서 심란했으나, 내 이럴 줄 알았지. 이제 그 정도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대신 조용히 오답노트를 꺼내 들었다.     



바꿀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는 게 이득이다. 타고나길 느린 사람이 있다. 둘을 알려줘야 하나를 배우는 사람이 있고 동시에 여러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노력한다고 이런 성향을 바꿀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감나무에 빨간 물을 준다고 사과가 열리지는 않는 법이다. 하지만 키가 작게 태어났다고 원망하고 있기보다 스트레칭을 해주고 더 빨리 움직일 궁리를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마 직장을 바꾸게 되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이 다시 쏟아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예상 가능한 실수라도 줄여볼 뿐이다. 했던 실수만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 다시 엄마 이름의 ‘아’를 ah로 쓰지 않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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