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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Apr 08. 2024

심리상담사로 산다는 것

사람들이 심리상담사라고 하면 오! 오! 하는데, 그 반응에는 앞으로 유망한 직업이라는 것과 상담료가 꽤 비싸니 돈도 꽤나 벌겠거니 하는 생각, 아니면 이 사람이 내 속마음 다 꿰뚫어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오해 등등의 반응인 듯하다. 


사실은 이 업계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여러 고민들을 지난 요즘 드는 생각은 이 업계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공부할 것도 많아서 학교도 많이, 오래 다니고, 개인적인 교육, 수련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 거에 비하면 상담사 처우는 정말 처절한 편. 어제 어떤 상담사는 생계가 걱정이라고 했다. 대학원도 다녀야 하고, 수련도 받고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원하는 대상과 상담을 하는 것도 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생계를 위해서는 행정업무가 아주 많은 기관이 불가피하고(그나마도 좋은 처우는 아니지만). 당장에 생계가 걱정이라는데, 어떻게 상담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참. 그래서 천천히 망하려면 상담공부를 해라, 상담은 집안이 빵빵한 사람이나 하는 공부다. 유익한 학문이지만, 밥벌이하기로는 어려운 분야라고 몸담은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상담을 왜 하느냐, 상담사로서의 가치를 물었다. 상담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내가 제일 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를 안전하게, 가정을 더욱 단단하게, 건강하게 세워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깨어진 세상에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힘 있게 세우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어보면 어떨까 오래 생각해 온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0년,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봐야 40대 중반이다. 그때 나는 꽤나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에게 맞는 일을 더 또렷이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울적하게 지낼 수가 없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다. 우리 남편도 10년 차가 되니 일이 많아지고 바빠졌다. 이 판에서 전문가로 인식하고,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어떤 배우들도 무명의 시간이 있고, 가수들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지치지 않고, 아니 지쳐도 다시 일어나면서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동기가 확실한가? 응 나는 확실하다. 그러니까 그만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해 본다.


상담사의 소진예방이 중요하다고 했다. 셀프케어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셀프 케어할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상담을 꾸준히 많이 해봐야 내 역량의 한계를 넓힐 수가 있고, 그래야 성장하는 건데 상담을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것 같으니 말이다. 상담료를 낮게 책정한 이유는 조금 더 쉽게 접근하고 싶어서 문턱을 낮추는 의미도 있는데 이 역시 상담을 꾸준히 지속하는데 뾰족한 수는 아닌 것 같다.


다른 게 소진이 아니라, 상담을 계속하고 싶지만 내담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길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더 소진하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면서 살아남아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나는 상담 보다 더 다른 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계속 쌓아가는 시간 동안 성실하게, 내담자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만나고 나의 실력도 쌓여가고, 역량 강화를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상담을 했다. 역시나 상담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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