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차단하는 엄마의 습관
상담 중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랑 단절되어 있는 상태가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그리고 엄마는 생각해 보면 이럴 때 도마뱀이 꼬리 자르고 도망간 것처럼 쏙 숨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랑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연락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의 연락을 내심 기다린다. 평소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통화하던 엄마가 없어졌다.
사실 재작년 일로도 엄마에 대한 마음이 아직 괜찮아지지가 않았다. 그때는 분양권 투기 문제로 갈등했었다. 아빠가 반대하는 일 몰래 저질러 놓고 뒷수습하느라 괴롭고 힘든 시간 보내놓고 이제는 다 지나갔다며, 회개했다며 하나님은 다 받아주시는 분이라면서 그날 일을 두고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은데 말이다. 엄마의 그런 뻔뻔한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났다. 지금 엄마 제대로 죄책감도 못 느끼는 건가 싶어서.
엄마는 정서적으로 둔감했다. 자신의 감정과 동떨어져있는 삶은 자꾸 일로 빠져든다.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일, 본인이 필요한 곳, 본인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빠져든다. 일중독, 돈중독, 종교중독 등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엄마가 수없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늘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면서 고집했던 것을 많이 봐왔다.
결국 엄마가 이겼다. 왜냐하면 엄마는 자기 딸도 아빠를 미워하게 만들어버렸고, 엄마를 존경하게 만들었으니까. 아빠의 알코올 중독만 문제인 줄 알았지 당시에 나는 엄마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는 결국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했고 본인이 시간이 지나서 지치거나, 뭐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으면 내려놓고 돌아왔다. 가족들은 그 모든 것을 지켜봐야만 했고, 아무것도 나서서 말릴 수도 없었다.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에서 보면, 정서적 단절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족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의 미해결 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 집은 수시로 단절을 선포했다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졌다가를 반복했다.
엄마가 나와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 잠잠히 있어야 했다고 하며 합리화할 것이다.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 있니?' 이런 원망을 하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감정을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냥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만 할 것이다.
엄마는 어쩌다 이렇게 살아가게 되었을까?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아기에서 정신적 성장을 멈춘 것일까? 나 엄마랑 아무래도 가족치료, 가족상담을 받아야겠어. 엄마를 알아야겠어. 이해해야겠어. 그런데 엄마가 도마뱀처럼 꼬리 자르고 도망갔으니, 이번에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