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나

by 단단

엄마랑 만나기로 했는데, 조카가 아프다고 엄마가 조카를 데리고 오겠다는 거다. 나랑 만나는데 아픈 조카가 왜 오지? 이해할 수 없다. 엄마는 왜 본인이 선을 그어야 할 것을 못해서 나에게 문제를 넘기는 것일까? 진짜 화난다. 엄마는 여기저기 다 맞춰주느라고 “내가 연락할게” 하고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물론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한 번은 참았는데 두 번은 못 참아서 전화한 거니까.


지난번에도 부모님이 나를 만나서 오는 날, 2호 조카가 아파서 엄마 아빠가 아픈 애를 데리고 온다길래, 그냥 오시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다. 아 정확히 말하면 이번엔 엄마 생일을 앞두고 만나는 거고, 지난번 가을에는 아빠 생일이라서 만나는 거였다. 동생은 왜 부모님이랑 나랑 만나는 날에 (자주 있는 일도 아닌데) 아픈 지 새끼를 보내는 걸까. 저 알바 가야 하니까? 그건 저 사정이지. 나는 왜 이 집구석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기분이 들지?


언제부터 동생 놈은 문제를 일으켜서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해버렸다. 알아서 잘하는 캐릭터로 내가 굳혀져 가는 동안, 동생은 슬프고 어두운 기색으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엄마의 애간장을 녹게 했다. 우리 자매는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애초에 서로 다른 캐릭터임은 물론이고, 갈수록 자기 인생 캐릭터는 정해진 것 마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동생을 사랑한다. 결혼하고 나선 더 애틋해진 내 동생을 여전히 많이 사랑한다. 동생을 두고 질투를 하고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속 깊은 아이였다. 25개월 차이 나는 내 동생에게 언니로서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왔다.


삼십 대 후반이 되고서 그때 못한 질투를 하려나보다. 왜 엄마는 동생 옆에 더 딱 붙어서 사는 건지, 왜 동생의 부탁이라면 거절 못해 안달인 건지, 왜 아직도 큰 딸에게 이해를 구하는 건지. 그때 못한 질투와 역정을 이제라도 내보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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