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 많거나, 아니면 자신만만한 부모

둘 다 자식을 소외되게 만드는 일

by 단단


엄마는 ‘엄마는 너희를 많이 사랑한다.’, ‘엄마는 자식이 최고지.’, 등등 엄마는 항상 자식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우상숭배에 비교하며, 자식 사랑이 끔찍한 자신을 맘에 들어했다. 나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이 부족하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했다. 내가 부모 사이에서 상처받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미안해하거나, 나를 걱정하거나 내 마음을 살펴준 적이 없었다. 나의 어른스러움을 친구 같다고 즐거워했다. 자녀에 대한 자기 사랑을 칭송하면서 ’꽤 괜찮은 엄마‘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엄마에게서 한 번도 제대로 공감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잘 들어주기는 했으나, 항상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제대로 공감할 줄을 몰랐다. 이제 와서 엄마가 내게 부족한 양육을 했다고 원망하자는 건 아니고,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나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에게 자주 미안해했다. ‘내가 자격이 없다. 내가 부모로서 정말 못났구나. 내 딸이 부모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한다니 미안하다. 여기는 잊고 살아라. 연락하지 않겠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체념했다. 이제 편안해졌다. 정말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문자는 너무 불편하다.


죄책감이 많은 아빠와 자신만만했던 엄마 사이에서 나는 소외되었다. 자신들의 모습에 빠져있는 부모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려웠다. 내가 부모를 돌볼지언정 부모가 나에게 정서적 돌봄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그 점이 이제는 덜 서러울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그 사실이 좀 아팠다. 여전히 부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싫었다. 이제 그만 놓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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