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에서 나를 지키는 힘

내 경계는 내가 세우자

by 단단

끝이 없게 보였던 고통도 내가 성장할 수록 다르게 느껴진다. 버거웠던 삶도 살아갈 만하게 느껴진다. 무거웠고 답답했던 짐도 가볍게 느껴진다. 원가족으로부터 넘어오는 과도한 책임감과 또는 걱정으로 하나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내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게 조금은 수월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모에 대해서 객관화가 되어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가족 내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걸 다 알수도 없고,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가족 내에서 강요받고 자란, 가치관, 규칙들이 내면화 되어서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선택할 수 있다.


내담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면서도 다행이다. 희망이 도사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갈수록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본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풀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변화된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존감이 싹트는 것을 본다. 가족의 문제가 무엇이길래.


자녀들은 부모에게 충성한다. 부모로부터 요구받은 역할을 감당한다. 암묵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된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격려한다. 부모의 문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부모의 메시지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순간을 함께 공유한다. 이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을 한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말이 쉬워보이지만, 가족 안에서는 절대 쉽지 않다. 살아보니 부모님의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내 걱정과 염려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단절하거나 회피하면서 갖게 되는 죄책감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나도 살고, 부모도 산다.


가족과 단절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을 끊어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크면, 덜 반응한다. 덜 휘청인다. 문제 여전히 있지만, 공존할 수 있다. 그게 단단한 삶이고, 내가 바라는 것이다. 가족과 거리두기를 하는 시간도 있고, 심하게는 단절해야할 때도 있다. 내가 바라는 건, 가족이 깨지는 건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돌봐야 할 대상이 가족이 아닌, 자기 자신일 때가 있다. 내가 괜찮아지면, 가족은 또 적절히 연결된다. 그러니까 먼저 지치고 힘겨운 자신을 돌보는 일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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