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과 복구가 일어나는 사이

끝까지 사랑하는 힘

by 단단

요즘 딸아이와 사이가 비교적 안정적이다. 아이의 쏟아지는 감정을 받아주기가 너무 힘들었었는데, 요즘은 ‘미안해요 ‘라고 먼저 다가온다. 한바탕 하고 뭐 할 것도 없이, 먼저 다가오면 일단 아이가 진정된 것 같아서 나도 맞받아치지 않아도 상황이 흘러간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때때로 싸우지만, 다시 회복되는 관계야‘ 이 이야기를 들은 딸은 가만있는다.



얼마 전 초등부 아이들과 캠프를 갔다. 첫날 아이들은 적응하느라 온갖 애를 쓰는 듯 보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취침 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은 친구들은 전화해도 된다고. 그랬더니 한 친구가 묻는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엄마랑 싸웠는데, 그래도 전화하면 엄마가 좋아할까요?” 그 물음에 잠깐이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ㅇㅇ아, 엄마랑 딸은 싸우고 화해하고 반복이야. 아침에 싸우긴 했지만, 네가 먼저 전화해서 엄마한테 이런저런 이야기하면 엄마가 좋아하시지~~~”라고 말했다. 그 옆에 듣고 있던 우리 딸이 말했다. “맞아, 우리도 미안해~ 하면 금방 풀려.”



파열과 복구가 일어나는 사이가 가족이다. 갈등할 수 있고, 때론 심하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어쩔 땐 손바닥으로 등짝 스매싱도 한다. 가족인가 원수인가 싶게 미운 마음이 솟구쳐서 괴로울 때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실망 때문에 미래가 암담해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다시 복구가 되는 과정이 있다면 괜찮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있고, 용서해 줄 마음이 있고, 잘 지내려고 애쓰고 나와 다르구나 이해하고, 내 주장과 조바심, 고집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바라봐주면 된다. 함께 잘 지낸다는 것은 파열이 일어나는 순간을 지나갈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이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폭발해 버리면, 다시는 복구가 되지 않을 것처럼 두려워서 감정을 숨기는 것은 어떤가. 서로 못볼꼴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려서 갈라서는 부부처럼 파열 후, 복구가 없다면 어떨까. 그런 순간에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복구가 가능하다. 이전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서로 품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복구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가능성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맞다. 지금-현재만 보고 단정 짓지 말자는 얘기다.



중요한 건, 끝까지 사랑하려고 하는 용기다.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면 된다. 자식은 이미 부모를 깊이 사랑한다. 부모가 아니면 안 되는 조건 속에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약자라고 하는데, 때로는 자식이 더 너그럽고 더 많이 용서하고 받아주는 것 같다. 파열과 복구가 일어나는 사이 그게 가족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많은 관계를 다져나가며 배우게 된다. 아이에게 오늘도 화를 냈다면, 배우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면, 내가 잘못한 게 생각나거든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그 순간 복구가 일어난다. 잘못한 일을 너그럽게 넘어가주자. 이해하려고 하자. 상대방의 진심을 보자. 믿자. 그래야 복구가 일어나는 가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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