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친구의 발을 여러 번 밟아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가정에서도 지도해 달라는 부탁과 당부가 담겨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당황스러웠고 걱정이 되었다.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편에게 연락했고, 남편도 아이의 어떤 점들이 걱정스럽고, 우리가 잘 가르쳐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새 학기 시작하고 한 달 뒤에 상담주간 통화에서도 아이가 학교에서 성의 없게 행동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서 지도하고 있다고 하셨고, 식사시간에 태도가 좋지 않아서 주의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때 내 마음에 훅 불안과 두려움이 들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지금까지는 유치원에서나 학교에서 어떤 주의나 피드백을 받았는지 내 귀에 들어온 게 없었는데 2학년이 되고 나서 2번째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소홀해진 거 같은 죄책감, 내 아이가 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선생님께 주의를 반복해서 받고 미움받는 아이가 될까 봐 두려움, 그래서 아이가 학교생활이 위축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싫고, 집에서 순하고 평화로운 아이가 왜 친구의 발을 여러 번 밟았나, 얘가 이제 눌러왔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가? 앞으로 이런 부분이 반복될까 봐 하는 예기 불안, 내 아이가 선생님께 예쁨 받으면서 학교 다닐 줄 알았는데, 이런 피드백을 받다니 당황스러운 마음...
어떤 마음들이 스쳐 지나가는지 지켜보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인데 그 기대에 못 미치니까 내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1학기 전화 상담 이후에 아이가 집에서 만들기 활동도 하고 좀 신경 썼었는데, 학교에서 활동할 때 자신감이 생겨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참 다행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집에서 누나가 하지 말라고 해도 또 그러고, 반복되는 문제로 아빠하고 누나한테 많이 혼이 난다. 그럴 때 내 마음은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빠하고 누나가 너무 아이한테 매섭게 군다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했다. 그게 잘못이었던 걸까? 나는 둘째 아이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나의 연장선으로? 나를 보호하고 싶은 것처럼, 둘째 아이를 감싸고돌았던 걸까? 왜? 최근 아이와 나의 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로 더 확실해졌다.
둘째 아이를 보면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 귀엽고 소중하고, 잘해주고 싶다. 가족 내에서 가장 평화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 혼이 나도 바로 '네'하고 수긍하는 아이, 어려울 게 없는 아이다. 요구사항이 많고, 감정표현이 격렬한 다른 식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게 짠하다. 그 속에서 나랑 아이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지켜준다. 아이가 다정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편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서 내 마음에 늘 둘째는 아기 다루듯이 하게 된다. 이런 나의 양육태도가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걸까? 오늘은 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아이가 어떻게 늘 좋은 평가를 받을까, 혼날 수도 있지 뭐, 잘못하면 혼나야지, 억울할 수도 있지 뭐, 어떻게 다 마음을 헤아려주겠나'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래. 단단한 엄마가 되어보자.'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준 탓에 이제서야 이런 상황과 감정을 마주하는 것일지도 몰라.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앞을 내다본다.
생각이 불쑥 불쑥 올라올 때마다, 아이에게 '오늘은 학교에서 밥 잘 먹었어? 선생님께 주의 안 들었니?' 계속 확인하고, 체크하지 말자. 불안한 마음은 내 것이다. 아이에게 넘겨주지 말자. 다만, 잘 가르치자. 집에서부터 잘하도록 훈련하고, 가르치자.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몸에 힘을 주고 반듯하게! 자기의 몫을 또렷하게 잘 해낼 수 있도록 키우자. 9살에 맞게, 10살에 맞게, 성장해갈 수 있도록 그 나이에 맞게 기대하고, 바라봐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