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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Jul 04. 2023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며느리가 되었을 때


카페에서 보고서 작성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 초에 아가씨가 출산하고, 어머니는 산후조리를 위해 아가씨집에 가시는 바람에 시댁에 내려간 지도 꽤 오래되었다. 3주 뒤면 아이들 여름방학을 맞아 시댁에 2박 3일 다녀올 예정이다.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기록해 보는 글.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다.


결혼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니가 아들을 장가보내는데 마음이 좀 많이 서운하셨던 것 같다. 결혼식에서 내 지인들이 나에게 시어머니 표정이 안 좋아서, 걱정된다고. 결혼식 끝나고도 회자되었던 이야기다. 그때는 나도 25살로 어린 나이여서 어머니의 그 서운함을 공감하지 못했고, 굳이 그렇게 티를 내셨어야 했나 싶었다. 나도 우리 집에서 귀한 딸이고, 우리 엄빠도 나 시집보내면서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으셨을 건데. (우리 엄빠는 나 결혼식 때 싱글벙글하셨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암묵적인 긴장 관계가 있었다. 어른들은 처음 맞이하는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시어머니 모드'를 미리 계획하신 적이 없다. 지나고 보니 우리 부모님도 '사위'를 대하는 '장인, 장모 모드'를 미리 설정하신 적이 없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가족의 문화 속에서 낯선 이로 삐그덕 대며 공존하는 신혼 초기가 있었다.


결혼하고 1년 뒤에 아이를 출산했다. 이때부터 며느리는 '갑'이 된다. 시어머니는 자식 사랑이 끔찍하신 분이어서, 아이를 낳자마자 며느리에게 온갖 지극정성을 쏟아부으셨다. 첫 아이를 키우느라 항상 정신없고 여유가 없었던 나는 어머니께 매주 1번씩 전화드리는 것을 잊어버렸고, 고향에 내려오라는 전화도 부담스러웠고 한번 내려가면 2박 3일은 기본인 세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면 충분한데... 가면 씻는 거 먹는 거 다 불편하고, 얼른 집에 오고 싶은데 남편과 동상이몽.  그래서 남편 고향에 내려가는 길에 싸우기도 부지기수.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전화 끊을 때마다 '사랑해요~' 하고 끊는다.

내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먼저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꼭 이렇게 끊어야 하나. 하. 전화 끊을 때쯤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또 그러시겠지? 하면 역시나 '사랑해요~" 하고, 나는 네! 저두용~ 하고 답을 들려드려야 했다. 누가 봐도 매우 어색한 톤으로. 내가 그렇게 다정한 며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른이 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내가 며느리 되는 것보다, 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요즘 시어머니는 대체로 며느리를 존중하고,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MZ 세대 며느리는 할 말은 다 하고, 어른들이라고 고분고분 따르는 법이 없다. 고부갈등의 양상이 달라졌다. 며느리 눈치 보느라, 며느리랑 같이 사는 건 시어머니가 먼저 거절하는 추세.


어머니가 내게 전화 걸면서 '지금 통화해도 되나?'라고 여쭤보실 때마다 죄송하다. 먼저 전화 걸어서 '어머니, 잘 지내셔요?'라고 묻지 못한 것도 죄송하고, 통화해도 되는지 물어보시게 한 것도 내가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써서 그런 것 같아서 말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아들을 장가보내야 하면서 서운했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그때 어머니가 왜 그렇게 아들 보내기 싫으셨는지, 그게 '며느리'에 대한 탐탁지 않은 마음이 아니라, 아들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더 많이 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 것을 안다. 시댁에 다녀오면 항상 배가 부르고, 냉장고도 꽉꽉 채워진다. 아이스박스에 가득히 얼려져 온 곰국, 미역국, 반찬들, 김치류 택배를 받아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며칠을 고생해서 음식을 하시는 게 눈에 선하다. 그게 다 사랑인 것을 안다.


내가 다음 달에 3일 동안 첫째를 데리고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는데, 어머니가 둘째를 등하원 시켜주시겠다고 우리 집에 며칠 올라오시기로 했다. 며느리가 혹여라도 불편할까 봐 따로 또 허락을 굳이 맡으시는 어머니. 그런 배려에 있던 부담도 싹 사라진다. 내가 살림 못하는 건 이미 아실 거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어 좋다고 하시는 어머니, 그것도 사랑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며느리는 받은 끝끝내 사랑을 다 갚지는 못할 거다.

어머니의 사랑의 총량에는 달할 수 없을 것.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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