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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Jul 27. 2023

돈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돈에 대한 치유 1 - 돈에게 받은 상처 해부하기



나에게 돈이란 탐욕이다.




생활력이 강한 엄마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항상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돈이 있어야 자율성이 따른다는 것을 엄마는 잘 아셨던 것 같다. 얼마를 벌든 간에 엄마에게 들어오는 돈은 꼭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새는 돈 없이 알뜰살뜰 돈을 잘 관리하는 엄마는 아마 부모님의 경제관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외할아버지는 농협이 직장이었고, 당시는 은행원이라 하면 꽤나 부유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5남매를 낳고 키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과정은 잘 모르지만, 경제개념이 투철하신 것은 분명했다. 수중에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관리하셨길래 땅이 계속 나오는지. 여하튼 외조부모님은 노후에도 돈 걱정 없이 사실 수 있었다. 나이가 쉰, 예순이 되는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있기를 하나, 어려운 자식에게 크게 한 몫 떼어줄 수 있는 분들이셨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가난한 집은 아니었다. 아빠는 교사였던 할아버지가 언제부터 사과 과수원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꽤 넓은 과수원이었다. 한평생 7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사과 농사까지 지으신 할머니는 허리가 휠 대로 휘셨던 정말 꼬부랑 할머니 었다.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에 머슴이 있을 정도로 잘 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 댁에 어릴 적에 놀러 가면, 외양간이 있고 누런 황소에게 여물 주는 것 구경하는 게 재미였다. 아빠도 나름 유복한 집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님이 줄기차게 갈등하던 이유는 성격차이가 아니고, 돈 때문이었다. 아빠는 누리는 게 뭐냐, 한 푼 한 푼 가계부를 꼼꼼히 쓰고, 돈 쓰는 거 가지고 엄마를 들들 볶았다. 그러면서 엄마가 일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하면서 아이들  키우는데 전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5살이 되던 해 (동생은 3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다. 3년을 남편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고집이 세다고 매일 우리한테 흉을 봤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내가 팔이 부러져서 한 달을 입원하느라 엄마는 네트워크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일이 돈이 안되기도 했겠지. 그 뒤로, 우리 집에서는 일하고자 하는 자와 통제하는 자의 대결 구도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돈이 문제라거나, 돈 = 탐욕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일을 못하게 하는 아빠가 문제라고 생각했지, 일 하고 싶은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결정적인 건, 내가 결혼할 무렵 엄마가 또 새로운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고 (그때가 한 4번째였나) 그게 너무 싫어서 내가 뜯어말리고, 아빠가 뜯어말려도 전혀 통하지 않는 고집 (그 사람들만 알고, 공유하는 회사의 비전) 때문에 진절머리가 났다. 정말 아빠 말대로 엄마는 고집불통이었고, 나는 엄마에게 크게 상처받았다.



이때부터 엄마가 새롭게 보이는 계기가 되고, 내가 가정을 꾸리고 나서 가장 첫 번째 한 선택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이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남편도 어린 시절에 엄마가 맞벌이로 외로웠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가 키우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둘은 이게 맞아서 남편 외벌이로 살기로 결단하고(결단이라는 표현이 맞지)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의식하지 않은 채 돈을 멀리하는 선택을 했다. 돈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는 ’ 가족의 화합‘이었다. 엄마가 자식사랑이 끔찍한 분이었지만, 남편사랑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그러니 두 분은 절대 수렴되지 않는 한 가지로 싸움을 되풀이했고,  우리 가족의 화합을 깬 건, 돈이었다. 엄마가 자기실현을 위해서 일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 돈= 탐욕=가족 깨트림’의 공식을 만들었고,  돈에게 깊이 상처받았기 때문에 돈이 들어오면, 쓰기 바빴고 돈을 모으거나 굴리지 못했다. 관리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돈을 따라간다는 건 엄마의 전철을 밟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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