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를 제대로 보기
어린 시절 돈에 받은 상처 때문에, 부모님이 돈을 대했던 방식 때문에 내가 돈과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돈에 대한 오해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이 지금과 다르지 않게 흘러갈 것이 뻔해 보였다. 엄마와 아빠와 반대로 살면서 돈을 제대로 직면하기 무서워하는 나는 가장 첫 번째로 엄마, 아빠를 제대로 보고, 이해하는 일부터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경제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엄마에게 경제력은 곧 자율성이었던 것 같다. 불안이 높은 아빠는 매사 조심스럽고, 통제를 일삼았다. 통제받고 싶지 않은 엄마는 자꾸만 새로운 일을 벌였다. 자신의 자율성을 돈으로부터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부어놓은 엄마의 개인연금 증권을 보여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성인이 되어 보니, 부모의 노후가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었다. 노후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얼마나 짐스러운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시부모님을 보면 천하의 나쁜 며느리가 되었다가, 또다시 어쩔 수 없이 효부가 되기로 결심하기를 반복했으니까.
하지만, 무모한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 얇은 귀가 문제일까, 방향성의 문제일까. 돈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어떤 치유가 필요할까.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새로운 아파트 분양권을 살까 한다는 소식에 부아가 치밀었다. 왜 이러는 걸까. 난 아직 작년 이맘때 엄마가 아파트 계약을 한 것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아빠를 볼 때 마음이 안 좋거늘. 어쩜 이렇게 단순하고 무모할까. 왜 이리 마음을 살피지 못할까 안타까웠다. 반대하니 결국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남편과 첫째 딸(나)에게 서운한 듯 보였다. 지금까지 제대로 못했다고, 이번에도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며.
아빠는 돈을 쓸 줄을 몰랐다. 본인을 위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헤프게 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색하진 않았다. 자식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야 할 도리는 충실히 하셨다. 돈으로 쪼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인 거였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 쓰지 못했고 열심히 회비를 내지만, 회비를 가장 누리진 못하는 사람. 그게 우리 아빠였고, 아빠의 인생을 보면 불쌍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버는 삶, 아빠에게 직업은 자아실현 수단은 커녕 경제적인 수단이었다. 책임감이 강했으니까,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30년 근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아빠의 성격상 경찰이라는 직업은 불안을 짊어지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한데, 아빠는 한 번도 본인이 경찰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으셨고 퇴직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긍심이 없는 직업생활의 마감을 보면서 딸로서 안타까웠다.
엄마의 고집을 꺽지 못해서 벌인 투자로 인해서 아빠는 한평생을 고통당해야 했다.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또 그것을 막을 감당이 안돼서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몇 달이 안돼서 2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 아빠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일을 한다. 나는 퇴직하고 여유롭게 사는 아빠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이건 참..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아빠의 분노가 이해가 되는 지점이었다.
돈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짝사랑하며 쫓아가는 사람에게 돈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갈 리가 없다.
자기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이 흘러갈 리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