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달림이 재현되는 곳이 가정이다.
고통과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피하며 살고 싶다. 고통을 만나면 골몰히 바라보며 생각하며 대처하기는 하지만, 가급적이면 나를 시달리게 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가족은 이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고 안다 한들 어쩔 수 없다.
남편과 아이들이랑 있다 보면 투닥거리는 일이 생긴다. 특히 첫째 아이는 나의 핵심감점(시달림)을 만나게 하는 자극이었다. 그의 강한 자기주장, 신경질적인 말투, 내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 등은 ‘나를 건드려?’하며 잠자고 있던 내 시달림이 으르렁 거리는 자극이었다. 애가 뭘 알고 그러겠냐고. 나만 아는 것이다.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포인트는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것, 나를 계속 들들 볶는 것, 나를 조종하는 것, 감정으로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것, 눈치 보게 하는 것,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 뜻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 그게 설령 나를 위한 것이라도 밀어붙이면 그렇게 부아가 치민다. 처음에는 남편이 나에게, 그다음은 딸이 나에게, 시달림의 포인트는 끝이 없고. 수시로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차마 하지 못한 말 ‘. 다 그만둬버릴까?’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못된 엄마 같고 나약한 아내인 것 같아 괴로웠다. 지겹다는 말,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내 앞에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을 통과하고 있는 핵심 감정에서부터 나오는 언어였다. 얼마 전에 상담 선생님은 ”많이 시달렸네. “라는 말로, 내 심정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공감해 주셨다. 그런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시달림이라는 단어를 로 나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시달림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시달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시달린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무래도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를 해야 할 것 같네.
나는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 시달림이라는 핵심 감정을 어떻게 뒤집어야 할까? 분명 과거와 다르고, 지금은 지금인데 여전히 어린 시절에 반응하던 방식으로 자동화된 방식과 패턴으로 감정이 나를 뒤집을 때면, 무기력해진다. 죄책감이 들고. 과전류로 인해 퓨즈가 끊겨서 전력이 차단된 것처럼.
이런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자기 보호의 스킬에 대해서. 아이가 나를 시달리게 할 때 나는 나의 감정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 존중받지 못해서 화나는구나. 너 지금 이해받고 싶구나.‘ 문제는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알아차린다. 어휴 - 소리를 버럭 지르면 퓨즈가 끊긴 것과 같은데, 다시 전력이 공급되도록 복구되는 속도도 조금 빨라지고 있다. 죄책감도 금방 털어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겹지 않은 가족생활하기” 프로젝트. 나야, 할 수 있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