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생신화 다시 쓰기
“엄마가 사람 볼 줄을 몰랐어…”
어린 시절 아빠와 엄마가 어떻게 만났고 결혼했는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질기도록 싸웠던 아빠와 엄마는 알고 보니 캠퍼스 커플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땐 꽤 많이 컸을 때여서, ‘오? 그래도 연애 결혼했네? 그래도 사랑했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빠와 엄마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에서 만났다. 군대를 다녀온 아저씨였던(그 당시는 복학생이 아저씨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아빠가 스물셋의 엄마에게 캔커피를 건넸다. 좀 웃겼다. 자기가 좋아서 들이대놓고, 왜 그러는 거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심 아빠와 엄마가 사랑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랑 싸울 때 ‘엄마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했고, ‘할머니가 아빠를 처음 봤을 때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했다. 어른들이 연륜이 있어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안다고 깊게 각인이 되어있는 이유도 그때 엄마가 그렇게 알려줬기 때문에. 그래서 아빠를 반대한 건 지당하신 말씀이었다는 얘기, 그 반대가 맞았다고. 그럼, 결혼을 왜 한 거야. 반대를 무릅쓰고?
나 때문이다.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결혼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크면서 이상했던 게 나는 10월생인데,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왜 3월이지? 그때 한번 이상했고, 왜 엄마아빠 결혼식 날 엄마친구(이모)가 나를 맡아줬었는지 그때 또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 혼전 임신! 속도위반을 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존재의 수치심이 새겨졌나. 혼전임신이 부끄럽다는 뜻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느꼈을 어려움(부모의 반대와 가족들의 시선)이 나와 무관했을까? 아빠와 엄마의 신혼 시절 팽팽한 긴장이 나와 무관했을까?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놔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어린 시절이 그냥 회색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한 번도 태어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를 힘을 찾기 위해
나는 나의 탄생스토리부터 다시 재구성해야 했다.
할머니가 반대했고,
엄마가 사람을 잘못 봤고,
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한 결혼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지하는 결혼.
타인의 시선과 해석을 빼고 팩트만 집중해 보자.
“나 때문에 가족이 만들어졌다.”
“우리 가족은 내가 만들었다.”
“아빠와 엄마는 나를 책임지셨다.”
“아빠와 엄마는 가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시 쓰는 순간
시각이 바뀌는 순간,
아!!!!!!!!
“나 때문에 가족이 만들어졌네?”
”그리고 나는 가족을 만드는 사람이네. “
이어서
“나는 앞으로 가족을 살릴 사람이고,
가족을 만들 사람이네!! “
내 삶을 통과하는 이 이야기가 한 맥락으로 이어지고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