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유형 인간의 과잉친절 극복기
다 나같이 사는 줄 알았는데,
이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많고,
몇가지로 나누는 기준이 있다. 다양한 기준에 비추어 나를 알아보는 건 흥미롭고 유익하다. 그 중 한 가지 내가 회유형이라는 것이다. 사티어는 인간의 의사소통 유형을 5가지로 나눴는데, 그중 하나는 자기 자신과 타인과 상황을 모두 고려한 '일치형'으로 기능적인 유형이며 내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4가지는?
1. 회유형 : '나'무시 패턴, 타인과 상황만을 고려한다.
2. 비난형 : '너'무시 패턴, 자신과 상황만을 고려한다.
3. 초이성형: '나', '너' 무시 패턴, 상황만을 고려한다.
4. 산만형 : '나', '너', '상황' 세 가지 다 무시한다. 한마디로 상황에 부적절한 소리로 회피하는 사람.
나는 이 중에서 회유형에 가장 많이 걸쳐있는 사람이다. 개인상담 내담자 경험을 하면서, 내가 회유형 인간인걸 알았다. 세상에나! 내가 이걸 처음 알았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나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있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나는 내가 내 입장에서 의사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싶었던 거겠지) 혼자 생각하면 이리도 엉터리. 자기 객관화가 정말 어려운 거구나 느꼈다.
그러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서 보니, 나는 가게에 들어갈 때 친절하게 인사한다. 누가 나한테 호의를 베풀어주면 몸 둘 바를 모르고, 기분 안 상하게 하려고 한다. 피해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누가 나에게 뭔갈 부탁하면 어떻게 거절할지 거절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그래. 이거 그렇게 힘든 거 아니잖아.' 라며 안 하고 싶어도 한다거나, 거절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편이다. 모임에 가면 계속 미소 지으며 있다 보니까 집에 와서 얼굴 근육이 땅기고 아플 때가 있다. 내가 뭔가 탁월하게 잘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질투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 봐 신경이 쓰이는 편이고, 무슨 말을 해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어떻게 느끼겠어? 내가 바빠서 동생이 나한테 전화 못하면 어쩌지? 돌아보니 많은 면이 '타인위주의 삶'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강했다. 근데 이런 회유형의 문제는 몸에 배어서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고, 어쩌다 한 번씩 억울해하면서 화를 폭발하는데 그건 맞추다 맞추다가 지쳐서 나오는 행동패턴이었던 것이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도 남편의 요구사항에 결국은 맞추거나, 아니면 억울해하면서 화내거나! 아이를 키울 때도 웬만하면 맞춰주다가 (허용적인 모습) 결국엔 억울해서 폭발하거나! "내가 니 신하야?"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 "진짜 엄마가 제일 만만하지 너???" 이 말은 여러 번 이미 했다.
이런 내가 일치형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게 나였다. 나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고 살펴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너 지금 괜찮아? 할 수 있겠어? 네가 지금 원하는 게 뭔데?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건데?' 내 마음을 묻고, 챙겨주는 습관. 그렇게 하고 나면 조금 억울함이 줄어든다. 상대방을 나쁜 놈 만드는 패턴도 줄어든다. 왜냐하면 일치적으로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어." 내가 내 편에 서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선이 생긴다. 솔직히 순간순간 나의 감정, 기대, 바람을 자각하는 것은 많이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친절한 건 좋다. 회유형의 자원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이타심'이다. K-장녀에게 가정은 이타심을 기르기에 훌륭한 곳이었다. 20살이 되자마자 지긋지긋한 불화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지로 나왔지만, 나는 쭉 친정식구들과 연결돼서 살았다. 결혼을 통햐 약간의 분리된듯 했지만 여전히 원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과하게 마음 쓰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중재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조언하고, 제대로 살게 하는 일. 그게 우리 집에서 내가 맡은 일이었다. 엄마나 아빠한테 작은 부모 노릇하기. (가끔 엄마아빠가 내 기준에 철딱서니 없게 행동하실 때가 있었다. 휴) 이게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니더라, 다 나같이 사는 건 아니더라. 그리고 그런 K-장녀로 사는 게 내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르지. 책임감도 좋은 거긴 하지. 그래 자원이야 자원!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이제는 회유형의 결을 조금씩 벗어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각하는 거고, 그다음은 나에게 묻는 것이다. 나에게 물었을 때 습관적인 과잉친절, 과잉역할이라는 생각이 들면 안 한다. 까짓것. 이제 부모님과 동생과 거리가 생겼는데 이 거리가 처음에는 불편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작용했으나! 관성을 버티고 이겨냈다. 남편이 나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많이 느꼈을 텐데 '상담받고 나서 변했어. 공부하고서 변했어.' 나는 이런 피드백은 내가 잘 가고 있다는 신호로 느낀다.
지금도 내 신경망에 걸리는 여러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살피고 있는데 일부러 발을 뗀다. '그 사람 몫이야. 잘할 거야.'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타인지향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하는데 회유형 사람들은 일부러 발을 빼는 걸 훈련해야 한다. 사람마다 생긴 게 제각각. 어쨌든 이런 훈련은 자아존중감을 기르는데 필수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