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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06. 2023

내가 존경하던 엄마의 실체

엄마를 ‘이상화’했던 이유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수업시간에 존경하는 사람이 누군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라고 대답했다. 항상 바람 잘 날 없었던 우리 집에 대한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쪽(엄마)이라도 자랑해야만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빠를 원망하는 만큼, 엄마를 이상화시켜 사랑하고 존경했다. 우리 엄마를 존경했던 이유는 아빠가 그 난리를 피워도 이혼하지 않고, 우리를 잘 키웠다고 생각해서였다.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자녀들의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엄마였다. 본인의 결혼생활은 어려웠지만, 자녀를 대하는 모성만큼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없다. 왜 이 정도밖에 못하냐고 한 적도 없고, 엄마의 기대치를 나에게 들이대면서 부담스럽게 한 일도 없다. 공부를 못한다고 질책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내가 배운 것은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라는 것과 열정적으로 사는 삶의 모습, 책을 좋아하는 것, 건강관리,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모습, 두 자녀를 비교하지 않고 키운 것 등등이었다. 나는 엄마의 이런 모습을 닮고 싶었고, 엄마가 되어 사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었다. 이게 팩트다. 이 팩트 뒤에 가려진 진실은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실제로 아이들을 낳고 키워보니 엄마의 긍정적인 성격과 자녀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내가 닮아있었다. 그런데 부부 관계에서 만큼은 달랐다. 결혼생활을 하고 보니, 엄마가 ’ 아내로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를 속이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했다. 아빠가 통제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엄마는 경제적인 것에 집착하여 아빠를 불안하게 했고, 아빠를 외롭게 했다. 둘은 서로 쫓기고 쫓는 관계로 살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소홀했다. 부부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녀들, 특히 애어른이었던 나를 돌봐주지 않았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입고,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나의 정서는 어딘가 공허하고, 채워지지 않았다. 황폐해지는 지도 몰랐다.



왜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하면 좀 하지 말지.

몰래하느라고 왜 나를 두렵게 만들었어?

왜 아빠를 외롭게 해서, 내가 아빠의 말시중을 들게 만들었어?

엄마아빠가 싸웠으면 둘이 해결해야지, 내가 왜 고통받아야 해?

그 때나 지금이나 왜 나를 돌보는 사람이 없어?



서른이 넘어, 결혼생활을 하면서 엄마에 대한 감정이 뒤집어졌다. 아빠에 대한 분노는 연민으로 바뀌어서, 이 세상 모든 ‘위축자’들만 보면 그렇게 마음이 동했다. 즉, 아빠랑 정서가 비슷한 사람만 보면, 힘겨워하면서도 돌보게 되는데 의식적이지도 않았고, 지치는 줄도 몰랐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핵심은 자녀가 아니라 부부였음에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자녀들’에게 올인하고, 남편에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원가족에서 대물림된 부부관계 패턴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 이상화‘는 생존에 필수였고, 이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 패턴에 영향을 미쳤다.


자녀는 엄마와 동일시되어 ‘내 것’을 갖지 못할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자녀는 그의 세계가 열린다. 이제는 분리되어야 한다. 아빠에 대한 판단도 내 것이어야 하고, 감정도 내 것이어야 한다. ‘가족의 새로운 역사를 쓰자, 써보자! 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외쳤지만, 쉽지 않은 순간들이 오면 ‘그럼 그렇지. 내가 뭘.’ 자신감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내 발목을 잡고 원래 있던 자리에 끌어내리는 것 같아 아주 기운 빠지고 억울하다. 그래도, 나는 전보다 더 많이 알아차리고, 나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나의 독립을 간절히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나의 편, 남편이 있고 우리 아이들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은 거센 폭풍우 치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하고, 반짝이는 곳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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