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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08. 2023

내가 아빠의 ‘부모’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짐을 지우는가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는 자녀의 정서적 필요를 돌보거나 채워주지 않으면서,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보다 부모의 감정 상태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내가 그랬다. 아빠의 감정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집안의 분위기, ‘오늘’ 아빠는 어떤 상태인지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는 ‘자기 보호와 돌봄’따위는 몰랐다.) 그때 돌봄 받지 못한 나는 늘 정서적으로 외롭고 공허했다. 사랑받기 원했고 안정감과 소속감을 원했다. 아빠랑 같이 살지 않고 나서부터는 ‘눈으로 보지’ 않으니 아빠의 심경을 알 수 없는데, 전화했다가 괜한 불똥이 나에게로 튈까 봐 전화하기도 꺼려졌다. 세월이 지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지내는 사이가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정서적 덩어리인 가족은 어느 순간이 되면 ‘정서적 단절’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인생의 초기에는 아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모가 있어야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착 시스템은 생존에 필수적이고, 아이가 자라 갈수록 애착은 깨어지고, 대상이 바뀌는 변화를 맞이한다. 그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아빠는 어른이지 않는가? 어른은 이런 민감한 관심을 받는다고 생존하거나,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미숙한 정서적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아빠는 왜 본인의 정서적 필요, 돌봄, 진정을 자녀인 나에게 요구했던 것일까. 나는 아빠의 보호자가 되곤 했다. 술에 취한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어야만 했던 그때, 나는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어린 내게는 상처였다.


이제 와서 안 사실이지만, 나는 아빠와 정서적으로 융합되어 있었다. 나의 외로움은 아빠의 외로움과 닮아있고, 아빠의 분노가 곧 나의 분노가 되는 밀착된 관계였던 것이다. 나는 아빠가 우울하다고 하면, 나는 알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1분만 전화해 달라고 사정하고, 전화를 걸면  울음을 터트리는 아빠가 너무나 측은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의 감정에 깊은 동질감을 느껴왔었던 것이다. 출가한 딸에게 시시콜콜한 일들로 연락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정서적 압력을 방출할 곳이 필요하면 나에게 본인의 격렬한 감정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막상 내가 아빠를 위로하려 하면 ’ 괜찮아. 신경 쓰지 마라. 너나 알아서 잘 살아라.‘ 하면서 나의 연결을 철회한다. 그러면 나는 무기력해지고, 이용당했다는 기분이 든다. 아빠에게 엄마를 같이 흉보면서, 아빠에게 힘을 실어주면 문제가 생긴다. 아빠는 그것을 엄마와 나와의 관계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엄마에게 다 공유해 버리는 것이다. 내 말을 빌미로 엄마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내가 한 말들은 엄마에게 비수로 꽂히게 되고, 아빠 덕분에(?) 나와 엄마의 관계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래저래 가운데서 나만 상처받는 꼴이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아빠의 보호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돌봄 받았어야 하는 어린아이였고, 그때 나를 살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아빠의 보호자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아빠는 나의 아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내가 의지했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상처받은 감정이나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나의 정서적인 욕구를 돌보지 않고, 책임을 부인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엄마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일은 내가 성장하는데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해보려고 한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다른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 나는 나 자신을 돌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황,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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