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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12. 2023

엄마랑 2주 만에 통화를 했다.

다행히도 기대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행히 엄마한테 먼저 연락이 왔다. 반갑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마침 모임 시간이어서, 부재중으로 남겨놓고 모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덤덤한 듯 말하는 듯했지만, 엄마 역시 나에게 전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먼저 일상을 잘 살고 있냐고 물었다. 그 간에 많은 일들로 괜찮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엄마도 여력이 없었다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덤덤히, '나에 대한 믿음이 있네?'라고 하니, '그럼. 너는 내 희망인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문제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 같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엄마, 아빠 잘 지내고 있는지 신경 쓰이고 그러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것도 있지만 엄마한테 화가 나있다고 했다. '아, 엄마한테 화가 났어~ 그렇구나.'라고 했다. 화가 날만하다고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꽤 공감해 주는 것 같았다. '화가 났지만, 지난번처럼 그렇게 엄마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서 연락하지 않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연락 안 했다'라고 했다. '그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했다.' 엄마는 거듭 '아빠랑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다고, 봉합이 되었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안 믿는다.


내가 요새 어린 시절에 내가 외면했던 것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며,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존경 때문에 내가 눌러뒀고,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했던,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때문에 다 해결되었다고 넘어갔던 부분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아프고, 힘들지만 오기가 생기며 결국 언젠가는 더 나아질 거고, 엄마와의 관계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용되는 부분도 있겠지라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래? 주 1회 상담받아? 누구한테 받아? 도움이 되니? 관심을 보였다. 정말 남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한발 뒤에 물러나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온전해 지길 원한다고 하며 기도하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기도? 엄마가 이제 와서? 그럴 거면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엄마는 또다시 틈을 노리며 아빠의 통제로 인해서 힘들었다는 것을 호소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봉합이 되었고, 안정이 되었다고 했다. 아빠의 폭력적인 언행으로 인해서 상처받고 시달렸다고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리 본인이 잘못을 했어도 나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했다. 아빠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전이라면 ‘엄마도 힘들겠지’하고 나의 화난 마음을 내려놓고, 엄말 위로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먼저 듣고 싶지 않았고, 당연히 예상했던 방법이었고, 엄마가 말하는 모습이 불안정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엄마도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부부상담을 받든, 우리 넷이 가서 가족상담을 받든 지 하자고.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불완전한 상태로 문제를 내버려 두는 게 익숙하니까. 자기의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을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많은 내담자들이 문제와 섞여사는 게 익숙해서 상담실 문턱을 넘기가 힘들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엄마는 동생과 아빠를 핑계로 빠져나갔다.


엄마는 너무 다 좋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 객관화가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엄마만 죽어도 아니라고 한다. 지금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돈에 집착하냐. 그랬더니, 돈에 집착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내가 말해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엄마는 돈에 집착은 절대 아니니까... 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 빼고 다 아는 걸, 엄마만 모른다. 엄마야 말로 상담을 통해서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게 필요한데, 나보고 상담 잘 받으라고만 했다.


씁쓸하게 전화를 끊었다. 약 20분 남짓한 통화였다. 하마터면 길어질 뻔했다. 하마터면 애매하게 울어버리고, 어쭙잖게 위로받고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니 된 건가 하고 넘어갈 뻔했다. 나는 나로서 덤덤하게(사실은 정말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내 감정(엄마에게 화났고), 내 상태(괜찮지 않지만 노력 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부분들(아빠, 엄마가 지금 괜찮다는 것과 주일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많이 좋아졌다는 것, 엄마가 돈에 집착한다는 것)을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내려놨고 다행히도 나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주 크게 실망했고, 분노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기대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보다 꽤 덤덤하다. 기대를 내려놓으면 괜찮아진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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