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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06. 2023

엄마한테 연락하지 않는 이유

정서적 덩어리의 실체를 또렷이 보는 중


지금 엄마한테 연락하고 있지 않다. 지금은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불안하면서도 편하고 좋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천륜을 어떻게 끊겠는가? 당장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엄마와 통화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 엄마랑 자주 통화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보다 더 엄마와 연결되어 있던 존재였음을 느낀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잃지 못한 걸까. 여전히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내가 먼저 선뜻 전화를 걸지 않는 이유는 내가 상처받은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스스로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엄마가 다시 한번 나를 실망시킨 일에 분노했다. 모든 걸 이해하는 것 같은 엄마가 또 한 번 내가 정말 원치 않는 일을 벌인 것에 대해서, 엄마에게 실망했다. 아빠의 불안함, 우울함을 내가 감당하다 보면 엄마가 원망스럽다. 매우 자연스럽게 아빠의 감정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걸 또 이야기하기 너무 힘들다. 더 이상 미안하다는 소리도 그만 듣고 싶다.


내가 유별난 사람 되어버리는 가족 구도안에서  부모에게 내가 다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쩌면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전화를 걸면, 어떤 방식으로든 상황이 정리되고 유야무야 될 것인데, 내 손으로 먼저 또 하고 싶지 않다. 애쓰고 싶지 않다. 나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해야 한다. 상처받은 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돌보는 일은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는 모와의 정서적 덩어리를 또렷하게 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지긋지긋하고 아프다.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내 감정, 행동이 지나치고,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차리고 보면. 이 정서적 덩어리로부터 어떻게 건강하게 분리, 개별화할 수 있는지 쉽지 않지만 연구해야 한다. 엄마의 사랑을 잃지 못한 내가, 여전히 돌봄 받기 원하는 어린아이가 다독여지면,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는 또 만나게 되리라. 편안하게. 그때 연락할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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