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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03. 2023

아빠가 우울하데요.

아빠가 우울증이라고 하면, 나는?

아빠가 우울증이라고 하면? 내 마음이 어떨까. 아마 지금 하고 있는 거리두기 해제하고 당장 달려갈 것이다. 물리적으로 간다는 뜻이 아니라, 아빠에게 전화해서 여러 가지 묻고 확인하고 아빠에게 맞는 처방을 내릴 것이다. 상담센터를 간다거나, 정신과를 가보라고 주변에 있는 병원이나 센터를 찾아주겠지.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하지만,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감정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아빠가 우울증이라고 했을 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가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증상을 보며 자신과 일치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차라리 우울증인 걸 알고 관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우울증인지 아닌지, 여부보다 아빠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패턴들이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나머지 가족들도 아빠를 우울증 환자로 여기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 협조할 테니까. 짐을 나눠질 수 있겠지. 그만큼 아빠의 ‘증세’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해 온 것은 나뿐이었고, 다들 꿈쩍도 안 하기 때문에. 차라리 진단을 받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정말 우울증인데, 내가 이리 무심해도 되나 싶어서. 정말 무슨 일이 나서, 내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되면? 후회를 하게 되면? 그 생각을 하니 불안해지고 아찔해졌다. 아빠의 증상은 사실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주면 끝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내가 아무리 상담공부를 한 사람이라도, 아빠의 우울증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아니,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 이제는 그만 아빠와 분리되고 싶다. 아빠의 우울증 때문에 또다시 아빠와 깊이 엮이기 원치 않는다. 이런 나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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