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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Aug 17. 2023

소외감을 느꼈던 때

엄마, 왜 나한테는 편지 안써줘?


어렸을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확 올라와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엄마는 동생만 예뻐한다며 질투같지 않은 질투를 시전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라면 그럴 리 없었던 내가 뭐가 그리 서러웠던지 거실에서 과일을 먹다가 방으로 들어가서 나 좀 봐달라는 소리를 했었을까. 그렇게 투정부렸을 때 '안그러던 애가 왜 그러지?' 싶어 아빠, 엄마가 당황하며 내 감정을 받아준 기억이 난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결혼하고 엄마 집 근처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결혼, 임신, 출산을 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가 아니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아니 임신 기간에 입덧이 워낙 심했었어서 생존을 위해서 엄마가 필요했다. 그뒤로 첫째 아이가 6살이 되도록 동생은 엄마 집 근처에서 살며 엄마와 거의 한 몸 처럼 지내고 있다.


작년에 엄마가 새로운 아파트 계약을 하고 왔다고 전화로 통보받았을 때, 지금이 부동산을 구입할 시기가 아니라는 맥락을 빼고서라도 나는 먼저 서운하고, 소외감을 느꼈다. 이사하는 것을 나한테 말도 없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엄마, 아빠 이사하는 일이야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 왜 첫째 딸인 내 허락이 필요하단 말인가? 첫째와 둘째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서 소외감을 느꼈기에 부리는 생떼같은 거였다. 동생이랑 엄마가 10분 거리에 살았는데 더 가까워진다는 소리네? 거기서 화가 났다. 도대체 엄마는 언제까지 동생만 봐주며 살 것인가. 그리고 동생이랑은 다 상의하고 나누면서, 나는 왜 배제되는가?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육아하면서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 살았으니 내 동생도 육아는 스스로 좀 했으면 좋겠다. '너 이제 다 컸잖아. 이제 좀 알아서 해라'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 동생이 힘든 게 짠해서 대놓고 말한 적 없다. 동생도 그러고 싶어 그러지 않았을거라 이해하는 마음에. 엄마가 황혼육아 하지 않고 동생네랑 좀 분리, 독립적으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도 부담이 될까 아껴뒀다. 그런데 그 둘이 또 붙어 살기를 선택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소외감이 있다.


이 소외감을 붙들고 묵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린시절에 엄마가 동생에게 부었던 사랑과 정성이었다. 학교갔다 돌아오면 동생이 볼 수 있도록 편지를 쓰고 나갔던 엄마, 나에게는 편지를 안써줬는데 동생한테는 꼬박꼬박 써줬다. 나중에 동생이 그 편지를 한 봉투에 모아놓은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알았다. 소외감과 박탈감이라는 걸 느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동생은 어릴 때 엄마 껌딱지였고, 정서적으로 어두워서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쓰고, 기도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그 시절 일을 나가면서도, 동생에게 편지를 쓰고 나갔다고 했다. 많이 울고, 매달리고, 표정이 어두우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엄마가 신경을 써줄텐데.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텐데. 나는 씩씩하게, 무던하게 내 삶을 잘 견디고 투정도 어리광도 부리지 않는 역기능 가정의 K-장녀였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 나 아파, 와서 애들 좀 봐줘.' 한 적이 한번도 없다. 왜 나는 아프지도 않지? 왜 이렇게 꿋꿋하고 성실한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아이가 어린아이 답지 못할 때

가슴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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