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무인양품 유라쿠쵸점 / 헬로파머 일본 농업탐험 기획
디자인의 핵심은 ‘시각적 설득’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들, 한눈에 사로잡지 못하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디자인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단순히 제품이나 공간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농산물과 디자인의 관계는 어떨까, 농촌과 디자인의 결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그 모습을 일본의 상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양애진
거대한 공장같은 크기의 무인양품 유라쿠초점 입구
세계에서 가장 큰 무인양품(무지) 매장, 유라쿠초점.
겉으로만 보면 공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무지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청과매장과 오두막이 있다.
옷, 식품, 가구까지. 의식주와 관련한 모든게 다 있지만, 신기하게도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마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상품마다 비치한 간판이나 문구 따위가 없기 때문일까,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이 없기 때문일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무지 매장의 공간의 디자인은 아주 철저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매장의 1층, 청과매장은 단지 농산물만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농산물’이라는 키워드를 둘러싼 모든 요소, 그러니까 음식, 소비자, 농부, 농기구, 농촌, 농가가 어우러져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마치 한 편의 교향곡 같이.
최초로 선보인 1층의 청과매장
최근 농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한 무지.
아직 그 공간이 그리 크지 않지만, 공간 디자인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진열장을 높이 쌓아 시야를 가리기 보다는 철골 자재로 구역을 정리해 탁 트인 공간을 연출했다.
동시에 천장 가까이에는 전통적인 농기구를 배치하는 센스까지. 이런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자칫 공장이나 가건물 느낌을 풍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오히려 투박한 맛이 자연스러움과 옛스러움까지 자아내게 한다.
도심 상점에 새로 마련한 코너에서 나는 일본의 옛 농가나 창고를 떠올리며 편안히 그 공간을 즐길 수 있었다.
농산물 코너에 배치된 모니터에서는 농산물 소개 영상이 나온다.
각 농산물 마다 설치된 모니터에는 농산물을 재배한 농부와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생산지와 생산자에 대한 이야기는 눈 앞의 농산물과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매장은 음악 대신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농부의 이야기와 시골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했다.
나무박스에 투박하게 담긴 농산물과 그것을 기른 농부의 목소리는 도심의 상점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시골 시장의 정겨운 기분까지 안겨주는 연출이다.
마트의 배치는 소스, 농산물, 가공식품 등 카테고리대로 정렬돼 있다.
하지만 무지는 다르다. 농산물의 배치에도 생산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예를 들자면 첫째 칸에는 당근 그 위에는 당근으로 만든 소스, 참깨 옆엔 참깨 소스, 검은깨 옆엔 검은깨 소스로 배치하는 식이다.
원재료에 따라 배치한 구성은 식품을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오렌지 밑에는 오렌지 패턴의 에코백을 걸어놓아 흔한 과일 그림 에코백의 매력을 한층 높였다.
진열 하나에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담아낸 무지의 기획과 섬세함에 그저 무릎을 칠 수 밖에.
무지는 제품을 분류할 때 기존의 기준인 ‘기능’도 따르지 않았다.
조미료는 조미료끼리, 그릇은 그릇끼리 배치해 두지 않는다.
조미료는 중간중간 조미료를 보관하기 좋은 용기를 함께 배치해 농산물과 가공품이 자연스럽게 ‘요리’라는 코드로 이어졌다.
미소 된장 옆에는 미소 된장국 요리만 엄선한 쿠킹북을 두는 것. 이것이 무지의 진열스타일이다.
마이크로하우스 무지
지난 2015년 무인양품은 도쿄 디자인 위크에서 세컨드 하우스 컨셉의 도심형 오두막을 제안했다.
오두막이라는 소박한 이름과 달리, 집 안은 깔끔하고 모던했다.
양철지붕에 목재 외관, 외벽에 칠한 블랙 계열의 페인트까지.
디자이너에게 ‘모던하면서 클래식한’ 디자인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외관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편안함과 정돈된 느낌까지, 미니멀한 농가주택에 담긴 정서는 도시와 농촌,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기 충분한 형태다.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이 하나의 콘셉트로 모인 무지.
주거와 농장모델, 교육까지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는 팜프라와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좋은 공부가 되었다.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분야들을 한데 어우러지게끔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중심이 되는 하나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CSA농장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농장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를 설득할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어야 한다.
왜 굳이 집 앞의 마트가 아닌 산 속의 농장으로 와야하는지, 이러한 소비가 내포한 가치관과 철학은 무엇인지 말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를 잘 배치하고 디자인 하는 일이다.
이 글은 <도심 속 상점에서 만난 농산물 디자인>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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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이아롬 기자 arom@hellofar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