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01.22. 올해 가장 이루고 싶은 것)
새벽녘 선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얼핏 보면 다 똑같은 어둠이지만 새까만 어둠에도 진하기가 있어 금세 어두운 것과 더 어두운 것, 덜 어두운 것들의 차이가 보인다. 겹겹이 쌓인 어둠의 정도가 파악이 될 무렵이면 나는 그 눈길의 끝에 있는 작은 생명체의 오르락내리락거림을 바라본다. 50cm도 겨우 되는 주제에 몸을 웅크리고 있어 30cm나 될까 싶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존재.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을 연습해도 저렇게 사랑스럽게는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부드러운 곡선이 동그란 머리에서 볼록한 뺨으로 이어진다.
아직 명암이 완벽히 보이지는 않아 미간을 좁혀가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즈음에 있겠지 하던 눈이, 코가, 작은 입술이 보인다. 입술 즈음에 시선을 멈춰 또 기다리면 그 작은 입이 오물오물 거리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면 나는 이유 모를 안도감과 벅차오름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가 곧이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벅차올랐다가 금방 또 ‘아 귀엽다.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귀엽다.’하는 마음이 들며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만다. 그쯤 되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머리를 손으로 조심스레 쓸어본다. 고양이 털보다도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사락사락 느껴진다. 더 어루만져주고 싶지만 잠이 깰까 싶어 꾹 참고 곧장 손을 뗀다.
곧이어 나는 살면서 타인에게 준 모든 상처와 나쁜 말을 거둬들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손바닥으로 감싸 쥐어지는 이 작은 머리를 보며,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을 상처들을 곱씹어본다. 기억도 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어쩌면 상처가 되었을 것 같은 작은 것들까지 다 꺼내어 온다. 그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작고 소중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덧 번져오는 아침햇살로 또렷해지는 얼굴을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올 해의 모든 아침 해와 밤의 어두움을 나는 너에게 쏟을 거라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때때로 노래를 부르다가 잠과 밥 사이에서 집을 쓸고 닦으며 사랑하는 아기별, 너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게 될 거라고. 작은 콧구멍에 찬 코딱지나 미묘하게 어제와는 다른 변 색깔 따위에 전전긍긍하면서. 외출은커녕 환기도 조심스럽게 하지만 답답해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나갈 봄날을 고대하면서. 덜렁거리며 대충대충 살아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으로 너를 돌보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장한 각오를 다지면서.
누군가 올해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너의 건강과 행복이라고 진부하게 대답하겠다. 세상 유치하고 흔해빠진 말들이 얼마나 적절한 말이었는가를 실감하면서. 사랑하는 내 보물, 소중하고 어여쁜 아기별. 내 어깨에 온몸을 맡기고 늘어진 팔을, 한껏 찌그러진 볼을, 토자국이 남은 입가를 매일매일 이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