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러운날들(2019.10.17. 괴롭힘 고백)
교실 한가운데에 혼자 서서 내려다본 수학책에는 집합기호가 띄엄띄엄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다고 서 있는데 왠지 몸이 자꾸 좌우로 흔들리는 것 같아 발바닥에 힘을 꽉 줬다.
“야, 공부만 잘하면 다야? 인간성이 덜 됐는데. “
아무도 숨소리도 내지 않아서 수학 선생님의 악의가 교실 전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침에 조금만 일찍 올걸, 아니면 그냥 혼자 길 건너 올걸하고 후회했다. 교통을 봐주던 수학 선생님과 음악선생님의 수다에 신호등이 여럿 바뀌도록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왜 늦었니 하는 담임에게 이러이러해서 늦었어요 했지만 수학에게는 <우리 반 애가 선생님 때문에 지각했다던데> 정도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수학은 이를 갈고 나를 미워했다. 잘해보겠다고 용기 내어 질문을 하면 대놓고 무시했다. 왜 그렇게 나를 공개적으로 미워해야 했을까. 나는 고작 헐렁대는 교복마저 어색한 중학교 1학년이었다.
기억하려 해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 년은 어떻게든 지나갔고, 중학교 2학년 나의 담임이 된 수학은 나를 예뻐해 주기 시작했다. 총애와 신뢰가 제법 단단했으므로 나름 잘 해결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그 교실로 돌아간다. 좌우로 흔들거리는 다리를 멈추려고 발에 힘을 꽉 주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푹 숙인 그때의 기분을 또렷하게 느낀다. 그럴 때면 퍼뜩 그래, 편지를 쓰자. 편지를 쓰는 거야 한다. 그때 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상처를 주셨어요.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하고 익명으로 편지를 써 보내자고 다짐한다. 그러면 문득 생각이 든다. 너는 누구를 괴롭혀보았느냐고.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알고는 있느냐고. 그러면 또 나는 편지 쓸 마음은 사라지고 너나 잘해라, 하고 그만두는 것이다.